국제 국제일반

쿠바 아바나에 나부끼는 성조기…"카리브해 장벽의 붕괴"

“카리브해 장벽의 붕괴”(fall of the Caribbean Wall·‘유럽과 국제화’의 저자 빅토르 서컵)

14일(현지시간) 쿠바 수도 아바나에 미국 국기 성조기가 다시 나부끼는 장면은 그 자체로 역사적이다. 반세기 넘게 앙숙이었던 미국과 쿠바가 ‘공식 화해’를 함으로써 1962년 미·소간 미사일 위기로까지 치달았던 냉전시대의 잔재가 청산되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이념의 대립과 질곡으로 점철된 구(舊)질서가 막을 내리고 실용주의에 기반한 협력의 신(新) 질서가 확고히 자리잡아가는 국제관계 변화의 현주소를 생생히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이번 국교정상화를 세계사의 물줄기를 근본적으로 뒤바꾼 ‘베를린 장벽’과 같은 의미로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것은 금물이다. 상호 전략적 이해가 맞아떨어져 적대관계 청산을 선언하기는 했지만, 서로가 신뢰를 회복하고 ‘가까운 이웃’으로 가기까지는 풀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이는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지난해 12월 국교정상화 추진을 발표하면서 “국가주권과 민주주의·인권·외교정책에서 심오한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모든 이슈에 대해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확인한다”고 밝힌 대목에서도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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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국이 쿠바와 손을 잡게된 결정적 배경은 쿠바에 대한 유럽연합(EU)의 관계개선과 중국의 야심찬 중남미 진출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특히 아시아·아프리카에 이어 중남미까지 세를 확장해가고 있는 중국이 가장 큰 변수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으로서는 ‘기회의 시장’이자 ‘전략적 교두보’인 쿠바가 고스란히 경쟁의 대상에 넘어가는 것을 용인하기 어려웠다는 분석도 있다. 쿠바를 봉쇄하고 고립시키는 것만으로는 의미 있는 변화를 견인하기도 힘들고 역내 영향력을 유지하는데에도 한계가 있다는 자성도 작용했다. 반대로 반세기 넘는 금수조치로 경제난이 심화될대로 심화된 쿠바 카스트로 정권으로서는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빗장’을 풀고 미국과 손을 잡는 게 사실상의 외길수순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양측이 협력의 폭과 질을 의미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풀어야 할 난제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쿠바에 대한 미국의 금수조치 해제가 관건이다. 특히 쿠바는 지난 반세기에 걸친 미국의 금수조치로 2,000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봤다며 이를 보상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역으로 미국은 쿠바 정부가 몰수한 80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을 반환하고 손실보상을 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여기에 쿠바 망명자들이 몰수당한 자산을 돌려받는 것도 숙제다. 미국은 ‘쿠바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한 법’(일명 헬름스버튼법)에 따라 1959년 혁명이후 쿠바 망명자들도 쿠바 정부가 몰수한 자산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제제재도 예상만큼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려운 점이 문제다. 여행과 관련한 제재를 비롯해 무역·투자·금융 등과 관련한 모든 제재가 풀리려면 최소 5년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더욱 큰 문제는 의회 차원의 제재를 풀어줄 궁극적 권한을 쥔 미국 공화당 내에서 쿠바의 국교정상화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점이다. 플로리다 주 등 쿠바 망명자들이나 쿠바계 미국인들이 몰려사는 지역구 의원들 뿐만 아니라, 공화당 대선 잠룡들인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이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등은 여전히 쿠바를 독재국가이자 적성교역국으로 간주하며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다.

물론 큰 틀에서 볼 때 양국의 국교정상화와 이와 맞물린 쿠바의 개혁·개방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물줄기라는 게 쿠바 현지의 대체적인 분위기다. 카스트로 정권으로서는 비록 개혁과 개방의 속도가 느리지만 ‘시장’과 ‘사적소유’, ‘생산성’이라는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하지 않고는 경제난을 극복하기 어렵고 궁극적으로 체제에 도전적 요인이 될 것이라는 확립된 정책방향이 서 있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미국도 정파와 관계없이 이미 봉쇄·고립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고 쿠바를 ‘포용’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간다는 컨센서스가 형성돼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다만, 아직 서로에 대한 신뢰가 충분히 않은 상태에서 시동이 걸리는 ‘정상화 프로세스’에는 크고 작은 진통과 갈등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내년 초로 예상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쿠바 방문은 정상 차원에서 큰 틀의 매듭을 풀고 필요한 결단을 내리는 관계정상화의 화룡점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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