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계의 사설] 선례로서의 평양

월스트리트저널 10월8일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 주 북한의 핵 폐기 합의를 외교 승리라며 이란과의 협상을 위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올 연말까지 모든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겠다는 합의 사항을 지킬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북한은 아직 2ㆍ13 합의 사항을 지키지 않았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2ㆍ13 합의 때 결코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던 김정일 체제를 인정하고 구호품을 원조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신뢰에 기반한 것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희망과 기부에 가깝다. 이번 합의에서 연말까지 영변 핵 시설을 미국이 직접 둘러보고 핵 시설을 해제하도록 한 것은 분명 진일보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변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지난 2003년 북한에서 쫓겨 나가기까지 감시했던 곳이라 새로울 것이 별로 없다. 무엇보다 이번 합의에서 북한의 숨겨진 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해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놀라운 사실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빼주기 위한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이다. 이는 북한 기업이 지난달 불법적인 미사일 수출로 재무부로부터 제재를 받았고 믿을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북한이 핵과 관련한 정보를 시리아에 유출하고 있다는 혐의가 제기되고 있는 때라 더욱 어리둥절하다. 부시 행정부가 핵확산금지를 선언한다는 명분에 사로잡혀 이 사실을 눈감아 주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관리들조차 북한과의 합의가 너무 호의적이라고 말할 정도다. 한때 부시 행정부에서 일했던 잭 프리쳐드는 “북한이 외교적 성과에 결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미국으로부터 얻어낼 것이 많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우려되는 대목은 부시 대통령이 외교를 통해 북한을 개방화로 이끄는 것을 남은 임기 동안 꼭 해내야 할 치적으로 삼은 게 아니냐는 점이다. 클린턴 행정부도 94년 제네바합의를 계기로 북한의 개방화를 유도했지만 김정일 정권은 이를 거부했다. 우리는 이란과의 협상에서 북한이 선례가 될 수 있다는 부시 대통령의 언급을 신뢰할 수 없다. 북한보다 훨씬 덜 고립적인 이란은 북한의 사례를 통해 강한 군사력과 강경한 외교정책이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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