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약가 인하' 이렇게 생각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2일 복제약에 적용하는 건강보험 약값 상한을 현행 '특허 만료 전 오리지널 약값의 68~80%'에서 내년 초부터 53.55%로 낮출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국민의 약값 부담을 연간 2조원 이상 덜어주고 건보 급여액의 30% 수준인 약품비 비중을 오는 2013년 24%대로 낮추는 게 목표다. 이에 대한 찬반 의견을 들어본다. ●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학 교수
건보료·소비자 약값 부담 완화
신약 개발 통한 경쟁력 높여야
지난해 건강보험 진료비에서 약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9.3%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1.7배 높다. 약제비 증가율도 경제성장률의 2배 이상이다. 우리나라는 실질구매력 기준 복제약 가격에서도 최상위 고가격 그룹에 속한다. 오리지널 약품은 특허만료 후에도 본래 가격의 80%를 받고 복제약은 68%를 받는 계단식 구조여서 원가나 다른 나라의 사례에 비춰 상당히 높다. 고지혈증 치료제 심바스타틴의 국내 가격은 800원대로 우리보다 소득수준이 높은 스웨덴(80원대)의 10배 이상인데 이런 약품이 적지 않다. 게다가 동일한 효능을 가진 약 가운데 비싼 약일수록 더 많이 처방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 같은 현실은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발표에 의하면 의약품 매출의 20% 정도가 리베이트라고 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보면 건강보험에서 연간 2조6,000억원 정도가 리베이트로 지출된다는 얘기다. 이는 건강보험료 8% 인상 효과에 해당한다. 소비자가 그만큼 비싼 약을 먹고 있는 셈이다.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약에 동일 성분의 복제약보다 더 높은 가격을 보장해줘야 하는 이유나 근거도 없다. 특허 만료 후에는 복제약과의 가격차별을 없애 정책의 형평성,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국내 제약기업들이 새로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다. 약가를 적정 수준으로 조정하면 건강보험 재정안정 외에도 소비자의 약값 부담과 리베이트 관행이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다. 혁신적 신약에 우대가격을 적용해 국내 제약산업을 연구개발 중심으로 방향전환, 미래 성장산업으로 발전시킬 여지도 커진다. 소비자는 약의 가치에 상응하는 가격을 지불하기를 원한다. 약가 인하가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지난 십수년간 난맥상을 보였던 약가정책을 정상화한다는 의미에서 일대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쌍벌제 시행 이후 리베이트가 격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제약사들이 약가 인하를 수용할 수 있는 여력은 충분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지난 수십년간 높은 복제약가 정책으로 국내 제약기업들은 복제약 생산능력을 갖추는 등 성장에 적잖은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좋은 경영환경에서 연구개발 투자를 소홀히 하던 제약사들이 이제 와서 고가격을 유지해야 연구개발에 투자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국제 경쟁력을 갖춘 국내 제약기업이 없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국내 1위 제약사의 매출액은 국내 1위 화장품 회사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약가 인하로 제약기업 간 구조조정이 일어나더라도 건강보험 의약품시장이 여전히 유지되기 때문에 경쟁력 있는 제약사가 나머지 시장을 흡수하면 고용도 그리 염려할 문제는 아니다. 국내 제약산업이 모방 단계까지는 순조롭게 발전했으나 세계시장을 겨냥한 신약 개발 단계로 도약하지 못하고 지난 수십년간 좁은 국내시장에서 수백개의 영세업체가 과당경쟁을 벌였을 뿐 세계 수준에 미달하는 품질관리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의약품 매출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건강보험 약가정책을 잘못 운영한 요인이 크다. 합리적인 기업가라면 저품질이라도 높은 가격을 보장해주는 건강보험이라는 안정적 시장을 두고 위험천만한 연구개발과 경쟁이 극심한 해외시장에 나설 이유가 없을 것이다. 국내 기업을 위한 고가격 정책이 오히려 제약산업의 성장에 독이 된 셈이다. 이에 더해 리베이트 영업으로 확실한 매출을 확보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는 우량 기업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세계 제약시장은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19배에 이른다. 다소 고통이 따르더라도 지금부터라도 제약산업의 성장 잠재력을 키우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 김연판 한국제약협회 상근부회장
무차별 인하는 제약산업 위축
국민건강·의약품 주권 고려를
최근 보건복지부는 '약가제도 개편 및 제약산업 선진화 방안'을 통해 2조1,000억원의 약값을 일시에 인하하기로 했다. 이 조치로 환자의 본인부담과 건강보험재정이 대폭 절감될 것이라고 정부는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당장은 달콤할지 모르지만 결국 독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의 약값 부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이하로 외국 15개국의 평균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품비는 430달러로 OECD 평균(477달러)보다 낮고 GDP 대비 약품비 비중 역시 1.4%로 OECD 평균(1.5%)보다 낮다. 복지부는 우리나라의 약값이 구매력평가지수로 비교할 때 외국에 비해 높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구매력지수를 약값 책정시 사용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무역장벽, 세금, 수요ㆍ공급에 대한 고려도 없어 약값 책정시 채택에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복지부 스스로 인정한 바 있다. 국민의료비 대비 약품비가 높은 것은 OECD 국가에 비해 우리나라 의료서비스 가격(국민의료비)이 낮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현재 우리나라의 약값은 높은 수준이 아니다. 게다가 약값 인하를 지속적으로 진행해왔고 오는 2013년까지 기존 약값을 인하하는 정책이 시행 중이어서 약값은 지금보다 더욱 떨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부는 재정이 악화되자 가장 손쉬운 약가인하정책을 단기 카드로 뽑아들었다. 일반적으로 상품의 가격은 기업의 매출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기업은 향후 매출을 전망해 사업을 펼치고 연구개발을 하고 급여를 준다. 특히 제약기업은 복지부에서 정하는 약값과 의사의 처방에 의해 매출이 결정되는 만큼 정부 정책에 따라 산업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복제약 보험약가를 최초등재 오리지널 약값의 50% 수준으로 인하하면 13조원 규모의 의약품 시장이 3조원가량 축소되고 제약기업 매출도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충격적 조치를 내년 3월 시행한다는 것은 기업 경영의 예측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제약산업이 신약개발 단계에 진입하고 있는 마당에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다. 너무 즉흥적이고 과도한 정책이어서 신약개발 재투자는 물론 정상적인 기업 경영마저 어렵게 될 것이 자명해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제약산업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국내 제약산업의 기반이 무너지면 정부의 약값 통제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동남아시아는 다국적기업이 의약품시장을 70% 이상 독점해 '의약품 주권'이 무너진 상황이다. 이제 와서 자국의 제약산업을 육성하고자 여러 정책을 펴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결국 다국적기업의 고가 약값 요구에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 정부가 적절히 대응할 수 없는 형편에 놓였다. 얼마 전 신종플루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져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국내 제약기업인 녹십자에서 '그린플루-S'를 개발ㆍ공급해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은 바 있다. 국내 제약산업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약값 인하를 통해 제약산업의 구조조정을 도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산업의 구조조정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일방적으로 산업을 개편하려 하면 부작용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에 적용되는 의약품 가격은 일반 공산품과 달리 정부에서 약값을 결정하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 이를 고려해 약값을 합리적 수준에서 결정해야 한다. 정확한 시장분석 및 통계 데이터도 없이 일부에서 제기되는 사견과 탁상공론을 정책의 근거로 삼아 무지막지한 일괄 약값 인하를 단행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국가수준과 너무 동떨어진 정책이다. 약가인하정책은 국민건강과 의약품 주권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친다. 정부가 단기 성과에 급급하기보다 국가의 장래를 내다보는 긴 안목에서 약값 정책을 펼쳐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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