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박영범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현장중심 교육시스템 갖춰야 인력 미스매치 해소 가능



독일·스위스 대학교수들 박사학위 여부보다 현장 경험 중시

기업도 정부만 쳐다보지 말고 체계적인 직업교육훈련 나서야


내년 외국인력 도입기간 70.5일에서 64일 이내로 단축할 것


"독일이나 스위스의 대학교수들은 박사학위 여부보다 현장 경험이 많은 게 특징입니다. 그래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현장 중심의 교육이 이뤄집니다. 산업계와 기업이 주도하는 직업교육훈련은 청년고용 선진국의 바탕이 됐습니다. 우리도 직무능력을 높이기 위한 현장 중심의 교육 시스템이 갖춰져야 인력 미스매치 해소가 가능합니다." 박영범(58·사진)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지난 17일 서울 당산동 공단 남부지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고등학교 졸업생 3명 가운데 2명 이상이 대학에 갈 정도로 대학 진학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인데 대학에서 제대로 된 직업훈련을 받지 못하다 보니 졸업하고 갈 곳을 못 찾게 된다"고 인력 미스매치 현상의 원인을 진단했다. 실제로 우리는 취업 준비생들이 스펙 쌓기에 매달리면서 눈높이는 높지만 정작 역량은 기업의 눈높이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청년실업 문제는 심화되면서도 기업으로서는 업무에 적합한 인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 이사장은 "진학지도뿐만 아니라 진로지도에도 힘써야 하고 대학에서도 신입생 때부터 취업지도를 하면서 진로체험을 많이 경험해야 대기업만 쳐다보는 국민의식이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훈련과 함께 다양한 체험활동을 해야 중소기업으로 찾아갈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박 이사장은 대뜸 억만장자로 미국 뉴욕시장을 지낸 마이클 블룸버그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최근 고교생을 향해 "대학 진학보다 배관공이 되는 게 낫다"는 발언을 해 화제가 됐다. 배관공과 같은 전문 기술직이 중요해진 사회여서 굳이 학위를 받지 않고도 아메리칸 드림이 가능하다는 취지다.

우리는 아직 학벌 중심의 문화가 팽배해 있다. 게다가 노동시장 경직성이 높다 보니 사회생활 시작이 어디인가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한다. 박 이사장은 "대기업에서 대기업으로도 이직이 쉽지 않은 구조여서 기를 쓰고 좋은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취업 3수·4수를 하는 실정"이라며 "고졸자가 사회적 위치를 바꿀 수 있는 기회도 적다"고 분석했다.

그렇지만 그는 "미국이나 프랑스같이 우리 사회도 조금씩 기능과 기술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면서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는 특성화고 졸업생의 생애 소득이 대졸보다 더 많다는 직업능력개발원의 조사도 나왔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의 발언이 대한민국 사회에도 통용될 수 있다는 게 박 이사장의 견해다. 그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기반으로 설계된 과정평가형 자격과 신직업자격으로 인재를 평가하면 산업 현장에서 통용성과 신뢰성을 확보해 열린 노동시장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NCS와 이를 기반으로 한 일·학습병행제는 인력 미스매치 해소의 단초가 될 수 있다. 800개 직무별로 산업계가 주도적으로 만든 NCS는 노동시장에서 개인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일·학습병행제는 청년을 학습근로자로 채용해 NCS 기반의 교육훈련을 제공하는 한국형 도제제도를 뜻한다. 박 이사장은 "NCS를 활용하면 입사 후 재교육을 위한 비용이나 시간을 다시 투입하는 비효율을 최소화할 수 있고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인력의 효율적 활용이 가능하다"고 피력했다. 그는 또 "일·학습병행제를 통해 청년은 일자리와 국가자격을 취득할 수 있고 기업은 현장에 필요한 실무형 우수인재를 스스로 육성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능력중심사회로 변모시키기 위해 NCS와 일·학습병행제를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으며 공단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위탁 받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까지 일·학습병행제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은 2,000개를 돌파했고 이미 훈련을 시작했거나 예정인 학습근로자 수가 1만명이 넘는다. 박 이사장은 "자체 인력 양성에 목말랐던 기업이나 구직하려는 청년 모두 기대가 크다는 걸 보여준다"고 미소를 지었다. 내년에는 3,000개 기업, 학습근로자 1만5,000명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그렇지만 숫자만이 목표가 아니다. 박 이사장은 "아직 실제 훈련 받은 근로자가 배출이 되지 않았는데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그 청년들도 만족해야 목표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를 위해 제대로 된 관리에 힘쓸 계획이다. 특히 박 이사장은 "지속적으로 내용이 수정되는 위키피디아처럼 개발된 NCS도 6개월마다 현장 수요에 맞춰 고쳐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일·학습병행제를 고교와 대학 재학생으로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정부는 스위스식 도제교육 시범운영 특성화고를 9개 선정했고 대학 3~4학년 재학생을 대상으로 학사체계와 연계한 기업 도제훈련 중심의 교육과정인 장기현장실습(IPP)제도를 추진할 예정이다.

박 이사장은 "일·학습병행제 교육훈련을 수료하면 자격을 부여하고 기업은 이를 임금체계와 인사관리에 반영하면 자연스럽게 숙련기술인들이 우대 받는 사회풍토가 조성된다"고 역설했다. 이제는 학벌 대신 NCS가 인력을 평가하는 근간이 된다는 뜻이다.

직업교육훈련에 대한 기업들의 노력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던졌다. 박 이사장은 "우리나라는 직업교육훈련을 정부가 주도하고 기업이 따라오는 역사가 이어졌다"면서 "기업이 스스로 필요한 인력을 양성한다는 생각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독일의 한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와 나눈 이야기를 들려줬다. 정부 지원도 없고 근로자들이 다른 기업으로 이직할 확률도 높은데 자체적으로 체계적인 교육훈련을 시키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독일 내 기업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기 때문에 국가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고 우리도 다른 기업에서 양성한 인재를 데려다 쓸 수 있지 않겠냐"고 답했다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기업과 산업계가 주도해 직접 필요한 인재를 키우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산업인력공단은 청년들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K-Move 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해외통합정보망 구축을 통해 해외취업과 창업 등 필요한 정보를 통합 제공하고 실제 취업과 연계되는 해외 인턴사업과 교육연수 프로그램을 강화할 방침이다. 박 이사장은 "내년에는 해외 유망직종에 특화된 특성화고와 지역 거점 대학 육성을 통해 재학단계에서부터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는 해외취업 특화교육을 적극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또 "해외에 투자한 국내 기업들이 한국사람을 필요로 하는데 청년도 기업도 서로 잘 모르고 있어 연결시켜주려고 한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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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는 인내를 갖고 단기간의 성과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사실 해외 일자리도 별로 없는 게 현실인데다 네트워크와 생각도 잘 맞지 않는다"면서 "긴 호흡으로 가면 벌써 개선됐을 텐데 1년 만에 성과가 없다고 비판하니 아직도 그대로"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해외진출 경험이 풍부하고 후진양성에 열정이 있는 전문가를 멘토로 나름 성공한 케이스도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144명의 멘토와 약 940명의 청년 멘티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앞으로 멘토단을 200명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다.

외국인 근로자 고용지원도 공단의 한 역할이다. 박 이사장은 "내년에는 외국 인력 도입기간을 올해 평균 70.5일에서 64일 이내로 단축할 것"이라며 "기업 수요에 부응하는 우수한 외국 인력 선발을 위해 한국어능력시험과 기능수준평가 시스템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박 이사장은 고용허가제를 도입한 지 올해가 10년째로 외국 인력 정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고 제안했다. 그는 "젊은이들은 편의점에서 100만원을 받고 일하면서 150만원을 줘도 3D 업종에서는 근무하지 않으려 한다"며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우리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박 이사장은 또 "앞으로 초고령화 사회가 되고 외국인 근로자는 5년·10년 일하면서 숙련도가 높아질 텐데 이민자로 받아들일지에 대해 결정할 시점이 다가왔다"고 피력했다.

He is…

△1956년 서울 △1975년 서울고 △1981년 한국외대 영어학·경제학 △1986년 미 코넬대 경제학 석·박사 △노동연구원 연구조정실장 △1997년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노동위원회 공익위원 △2011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 △2011년 국가기술자격정책심의위원회 위원 △2011년 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선진화위원회 위원장 △2012년 청년취업특별위원회 위원 △2014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이사장 △2014년 한국직업방송 대표 △2014년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한국위원회 회장 △2014년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e메일·화상회의로 실무진과 수시 소통… "의사결정도 빨라졌어요"

■ 박영범 이사장의 '스마트 워킹'

황정원 기자

박영범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직원들과 수시로 e메일과 문자메시지(SMS), 카카오톡을 주고받는다. 본사가 울산광역시로 이전했지만 일정상 2~3일은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 머물러야 해 대면보고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동 중에는 갤럭시탭에 설치한 내부 업무망을 통해 결재도 할 수 있다. 박 이사장은 "전 직원들에게 모바일기기를 지급해 업무에 활용하고 있으며 대부분 보고사항은 사전에 e메일을 통해 받고 필요한 의견을 직접 회신한다"고 말했다.

과장이나 대리급 실무진과도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하다 보니 오히려 더 가까워지게 됐다는 설명이다. 직원들도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며 만족감이 높다.

모바일 오피스 외에 산업인력공단의 스마트 워킹을 대표하는 또 다른 하나는 화상회의 시스템이다. 박 이사장은 어느 지역에서건 지역본부와 본사 간 화상회의를 통해 주요 현안에 대해 수시로 소통하고 있다. 그는 "전문가들이 대부분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데 울산에서 회의를 하면 하루를 다 써야 해서 꺼리는 편"이라며 "화상회의로 효율성이 크게 증대됐다"고 설명했다. 잦은 출장으로 인한 직원 피로도 증가와 출장비 상승, 이동 시간이 많은 데 따른 업무 비효율 등을 해소하게 됐다는 얘기다.

박 이사장은 또 "전국에 30개 지사가 있는데 서울에 있을 때보다 현장과는 커뮤니케이션이 더 잘되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제 취임 4개월을 맞은 박 이사장은 재임 기간 동안 직원들의 역량을 높이고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쓸 계획이다. 위탁기관이라는 특성이 있지만 업무 능동성을 갖추도록 한다는 취지다. 그는 "공단이 평생직장이 될 수 있는 길을 직원들과 같이 고민하는 한편 역량개발에 도움을 줘 전문가집단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최근 인력 30명을 새로 뽑았고 내년 교육훈련비를 30% 늘렸다. 공단 전체 예산도 올해 1조293억원보다 14% 늘어난 1조1,700억원을 확보했다.

경력단절 방지와 일·가정 양립을 위한 시간선택제 운영도 늘리고 있다. 하루 8시간 근무하는 직원이 4시간에서 6시간까지 본인이 원하는 근무시간을 설정해 일할 수 있도록 한 것. 실제 공단 정규직 직원 한 명이 5년 장기 시간선택제 전환을 신청하는 등 총 13명이 시간제 근무를 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우리 사회는 직무보다 사람 중심이어서 옆자리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게 느끼는 경향이 크지만 여성 취업률 제고를 위해서는 시간제 일자리가 많이 확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직원들이 쌓은 업무지식이나 경험을 계속 살리고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대담=오철수 사회부장(부국장대우) csoh@sed.co.kr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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