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글로벌 포커스] 베트남, 국영기업 주도 성장 한계… 경제 개혁 나설까

인위적 통화가치 절하·통화팽창 등으로 물가 급등<br>정부 무분별 지원에 국영기업들 자생력 잃고 부실<br>차기정부 '비나신' 처리 여부가 개혁의지 잣대될듯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는 인력거 및 스쿠터(소형 오토바이)와 함께 벤츠와 롤스로이스 등 고급 외제차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띤다. 글로벌 경제가 고꾸라진 지난 2008년과 2009년에도 각각 6.20%와 5.30%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기록한 베트남 경제의 고속성장을 반영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베트남 경제에 최근 들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발단은 지난해 12월 국영 조선회사인 비나신이 사실상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한 것.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이를 계기로 베트남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 수준까지 끌어내렸고 전문가들과 언론은 암울한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 부정적 측면만 부각시킨 '베트남 때리기'라는 비판도 있지만 경제 실상은 이 같은 외부의 우려를 뒷받침한다. 베트남 고속성장의 주역인 국영기업들의 문제점이 불거지고 있고 치솟는 물가와 쌍둥이 적자(재정·경상수지 적자) 문제도 심각하다. 이 때문에 정부투자 확대와 팽창적 통화정책 등 이른바 '중국식 모델'을 따른 베트남 경제모델에 수정을 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경제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놓지 않는 베트남 정부가 개혁 요구에 반응할 지는 미지수다. ◇물가불안과 통화가치 급락 = 베트남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지난해 1월 7.62%(전년 대비)에서 12월 현재 11.75%까지 치솟았다. 정부의 물가 목표치인 7%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러한 물가급등에는 기상이변에 따른 농산물 수급악화 등 계절적 요인 외에 인위적인 통화가치 절하와 지속적인 신용팽창 등 성장지향적 경제정책이 근원적 이유로 지목된다. 고정환율제를 택하는 베트남은 10%대(GDP 대비)에 육박하는 경상적자 감축을 위해 지난 2009년 11월부터 지금까지 3차례의 통화절하를 단행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공식환율로 1달러에 1만9,500동이지만 암시장에서는 2만1,500동에서 거래된다며 "베트남인들은 암시장에서 달러화와 금을 구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고 전했다. 동화는 이 기간 9% 넘게 평가절하되며 물가상승을 크게 부추겼다. 이에 정부는 기준금리를 지난해 11월 8%에서 9%로 올렸지만 통화긴축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베트남 중앙은행은 지난해 은행대출 규모가 28%(전년 대비) 늘어났으며 올해에는 23% 증가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국영기업 주도의 고속성장 모델의 한계 = 기업평가회사인 베트남 리포트가 발표한 '2010년 베트남 500대 기업(매출기준)'에 따르면 상위 10대 기업에서 국영기업들이 6위와 10위를 제외하고 모두 차지했다. 500대 기업에서 국영기업의 비중은 46%이다. 베트남도 대부분의 신흥국가들처럼 '선택과 집중'을 성장 전략으로 채택, 국영기업들을 핵심 주체로 삼았지만 무분별한 지원과 경영 비효율 등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경영효율성을 반영하는 자산수익률(자산총액 대비 당기순이익) 경우 국영기업은 5.2%로 외국투자기업(13%)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 국영기업들은 베트남 총 투자금액의 40%를 흡수하지만 실제 생산량은 GDP의 25% 가량에 불과하다. 조선사업이 주력인 비나신이 증권, 여행, 부동산 등 무려 450여가지 사업에 진출하는 등 국영기업들이 문어발식 사업확장을 하는 것도 문제다. 베트남 정부가 국영기업에 대한 다양한 정책적 지원과 함께 은행대출 편중 등 금융 혜택을 제공한 게 이를 가능케했다. 이러한 국영기업 밀어주기는 베트남 정부의 성장 우선주의 때문이다. 베트남 정부 관계자는 "공산당은 오직 성장이 목표이며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좇고 있다"고 WSJ에 말했다. 실제 베트남 경제는 지난 5년간 연평균 7% 가량 성장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고성장은 베트남에 전례없는 수준의 물질적 향상을 가져왔다"며 정부의 통치기반이 여기에 있음을 지적했다. 하지만 최근 베트남 경제에 대한 시각이 나빠짐에 따라 지나친 정부의존으로 자생력을 키우지 못했던 국영기업들은 순탄치 않은 경영환경을 맞게 됐다. 베트남 최대 기업인 국영 석유가스공사(페트로베트남)와 국영 석탄광물공사(비나코민)은 최근 시장상황 악화를 이유로 각각 10억달러와 5억달러 규모의 채권발행을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베트남의 재정적자는 정부가 지난 2008년 대규모 경기부양책과 이후 다양한 사회간접자본 투자 때문에 지난해 기준 GDP의 7.4%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국영기업 부실문제가 불거질 경우 향후 재정적자 문제는 더욱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차기 정부의 개혁 가능성은? = 베트남 정부는 지난 12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되는 제 11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오는 2015년까지의 연평균 성장률을 8%로 책정키로 했다고 베트남 언론들이 전했다. 성장우선 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자리에선 베트남 공산당 최고 지도부와 총리가 새로 선출되는데 응웬 떤 중 현 총리의 연임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고속성장의 대가인 물가불안과 왜곡된 경제구조 등이 성장의 과실을 망쳐놓을 만큼 심각해지면서 이들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케빈 그리스 이코노미스트는 "베트남이 개혁을 계속 늦춰서 시장의 압력으로 억지로 개혁에 나선다면 그 결과는 좋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새로운 정부가 먼저 비나신 사태를 어떻게 처리할 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정부는 현재 비나신에 직원급여 등 운영자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6,000만달러의 원금상환을 위한 구제금융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차기 정부가 비나신의 채무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만약 비개입을 선언한다면 국영기업에 대한 강력한 개혁의지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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