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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50> 창경궁 지당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동물원과 식물원, 놀이시설이 꽉 찼고 벚꽃은 여의도보다 더 유명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남의 궁궐을 놀이공원으로 만들고 희희낙락했다. 수치스러운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다. 더 분통한 것은 해방 후에도 한참을 창경원으로 있었다는 것이다. 궁궐로의 복원은 1983년에나 시작됐고 원래의 모습을 찾은 것은 1986년이다. 민족의 치욕이 40여년간 더 지속된 것이다. 경복궁, 창덕궁에 이어 조선왕조의 세 번째 궁궐인 창경궁은 1484년(성종 15)에 세워졌다. 궁궐 중에서 유일하게 동향이다. 이는 국왕의 공식적인 거처가 아닌 별궁이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1418년 세종이 상왕인 태종의 숙소로 만든 건물터에 성종이 왕실 내의 여러 대비(선왕의 비빈)들을 모시기 위해 확장했다. 사진은 창경궁 내 침전인 통명전 옆 지당(池塘)의 모습. 지당은 생태적이고 장식 위주의 연못(池)과 생활·방화용수 공급처로서의 저수지(塘)를 합친 우리나라의 독특한 구조물이다. 창경궁 지당은 크지 않아도 아름다움에서 다른 궁궐에 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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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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