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의 화석연료 수입대국인 일본이 국제 에너지 가격 하락기를 인수합병(M&A)과 해외자산 매입의 '골든타임'으로 활용하고 있다.
2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내 2위 석유업체인 이데미쓰코산이 5위 업체인 쇼와셸을 인수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데미쓰코산은 내년 상반기 중 쇼와셸 주식을 약 5,000억엔(4조5,800억원)에 공개 매수해 자회사로 편입할 계획이다. 닛케이는 "인수합병이 성사되면 이데미쓰코산의 휘발유 판매 점유율이 30%로 뛰어올라 1위 업체인 JX닛코사와 2강 체제를 구축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석유업계 재편 배경에는 저유가로 M&A 비용이 과거에 비해 훨씬 줄어든 상황에서 업체들이 이를 적극적인 성장동력 확보 기회로 활용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데미쓰코산은 합병을 통해 전국적으로 8,000여개에 달하는 주유소망을 통폐합해 수익성을 높이고 몸집을 불려 원유매입과 운송 비용을 절감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업계는 이번 M&A로 약 6,000억엔의 투자여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회사 측은 이 자금을 성장성이 높은 해외 시장 진출과 자원개발 투자에 활용할 계획이다.
일본의 국내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 점도 일본 석유업체들이 동남아시아 등 해외투자에 눈을 돌리게 하는 요인이다. 닛케이는 "저출산과 친환경자동차 보급으로 국내 휘발유 수요가 전성기인 지난 1995년 대비 20%가량 줄었다"며 "석유업체들이 장기 성장기반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인 M&A에 나서고 있다"고 풀이했다. 이데미쓰코산은 이 밖에도 베트남에서 쿠웨이트 석유회사와 손잡고 일본 회사 최초로 정유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투자 규모는 총 90억달러에 달한다.
일본 자원개발 업체들도 원자재 가격 급락을 호기로 삼아 적극적으로 해외 자원 개발에 나서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일본 2위 종합상사인 미쓰이물산은 최근 브라질 발레사가 소유한 모잠비크 석탄광산 지분을 7억6,300만달러에 인수했다. 이 광산은 지난해 발레사에 거의 5억달러의 손실을 안긴 골칫덩이 사업장이었으나 세계 2위의 석탄 수입국인 일본 에너지 기업들은 향후 이 광구의 활용가치가 높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후쿠다 데쓰야 미쓰이 석탄 부문 이사는 "원자재 슈퍼사이클 국면에서는 이 가격에 이 만한 양질의 석탄광산을 매입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국제 석탄 가격은 2005년 톤당 약 50달러에서 2008년 200달러까지 치솟았으나 최근에는 70달러선까지 하락했다. 이에 따라 해외 석탄광산들이 헐값에 매물로 나와 일본 상사들의 입질이 잇따르고 있다. 이데미쓰코산은 지난달 인도네시아 열탄광산 지분을 두 배로 늘렸으며 이토추상사는 몽골에서 진행 중인 타반톨고이 석탄개발 프로젝트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일본 업체들은 저유가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미국 셰일 업계에도 손을 뻗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쓰이물산은 최근 2년 사이 텍사스주 휴스턴 주재 직원 수를 기존의 두 배인 50명까지 늘렸다. 일본 정유업체인 코스모석유도 4월 휴스턴 내 오일허브에 사무실을 차렸다. 일본 기업의 미국행은 미국의 원유수출 제한이 완전히 풀릴 것에 대비해 원유 공급처를 미리 확보해두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마이클 엘리어트 언스트영 광산자원담당자는 "해외 자원매입을 원하는 회사라면 지금이 기회"라며 "6개월 후에는 현재 수준의 가격에 매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