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탱자 울타리가 있던 과수원


지난 겨울 지독한 추위와 유난했던 여름 장마를 이겨내고 시골 과수원에는 탐스러운 과일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어린 시절, 명절이나 제삿날에야 맛볼 수 있었던 귀한 먹거리들이 가을 하늘빛을 담고 있다. 어릴 적 학교 가는 길 옆 과수원 주인은 귀한 과일들을 지키기 위해 과수원 둘레에 탱자나무로 가시 울타리를 만들었었다. 더 많은 과일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울타리로 방벽을 만들어 소극적 방어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2004년 4월 우리 과수산업에도 그동안 닫아 걸었던 탱자나무 울타리를 걷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바로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서 국산 과일들이 칠레산 과일들과 경쟁하게 된 것이다. 질 좋고 값싼 포도ㆍ복숭아 등의 과일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와 허리 휘고 가난한 우리 과수 농가들을 더욱 힘들게 할 것이라 걱정했었다. 농민 단체와 정치권의 FTA 반대 목소리는 하늘을 찔렀고 일부 농가는 그동안 애지중지 키워온 과실나무들을 뽑아내는 등 우리나라 과수 농업의 미래가 기우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전쟁의 폐허와 끊임없이 지속된 위기를 이겨낸 국민이 아니던가. 과수 농가들은 새로운 도전에 맞섰다. 낙후된 과수원 시설을 현대화하고 품질을 고급화하는 데 노력했으며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협동조합은 소비자가 찾는 과일 브랜드를 만들고 유통구조 개선에 노력했으며 정부도 약속대로 과수 분야 경쟁력 제고를 위한 여러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7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과수산업은 생산성이 15% 이상 향상됐고 노동력은 10% 절감됐으며 품질과 가격이 좋아지는 등 경쟁력은 오히려 높아졌다. 특히 칠레산 수입으로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 걱정했던 시설포도와 키위는 품질 고급화로 소비자의 사랑을 받으면서 재배 면적도 늘어나고 농가 소득도 증가했다. 우려했던 수입 급증에 따른 과수농가 소득보전 지원금은 한 푼도 쓰이지 않고 있다. 당당하게 위기를 기회로 성공적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수산물 중 홍어도 마찬가지이다. 국민들이 홍어를 저렴하게 즐기기 시작한 것은 한ㆍ칠레 FTA 이후 칠레산 홍어가 수입되면서부터다. 값이 저렴한 칠레산 수입으로 동네 어귀에 홍어요리 전문점이 여기저기 생겨나는 등 소비 시장이 크게 확대됐고 신선도와 맛에서 차별화된 품질을 갖춘 국산 홍어는 더욱 귀한 대접을 받게 됐다. 가장 강한 쇠는 가장 뜨거운 불 속에서 만들어진다. 우리 농어업을 지키는 힘은 탱자나무 울타리가 아니라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농어업인과 협동조합의 땀과 열정, 협력적 시스템이다. 우리 농어업인의 끊임없는 도전이 있는 한 내년 이맘때에도 우리 모두의 고향, 시골 과수원에는 미래의 희망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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