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無恒産 無恒心

나경원 <국회의원·한나라당>

외국출장 중에 인터넷으로 국내 뉴스를 보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기사가 하나 있었다. 제목은 ‘전교 1등 모범생 생활고에 절도범 전락’, 늘 수석을 하던 여학생이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그만두고 독학을 하던 중 배고픔을 참지 못해 라면을 훔치다 절도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이맘때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여대생이 가게에서 음식물을 훔치다 붙잡힌 한국판 ‘장발장’ 사건이 해가 바뀌어서도 되풀이된 것이다. 콧등이 찡해옴을 느끼면서 과연 우리 사회가 기사 제목처럼 이들에게 도둑의 멍에를 씌우고 절도범의 낙인을 찍어도 될 것인지 두렵고 안타까운 심정이다. 맹자(孟子)의 정전설(井田說)이 생각난다. 정치의 기본은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비롯된다.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생업을 보장하는, 즉 항산(恒産)이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일정한 마음, 항심(恒心)을 유지할 수 있는 법이다. 그렇지 못하면 어떤 나쁜 짓이라도 할 수밖에 없으며 사후 처벌은 무의미하다고 맹자는 설파한다. ‘곳간이 찬 연후에 예절을 안다’는 우리 속담도 같은 맥락일 게다. 얼마 전 모 일간지가 일자리 난으로 가장 타격을 받는 연령층이 15세에서 29세 사이의 청소년이라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청소년층의 고용불안이 이대로 간다면 이들은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가 돼 우리 사회의 꿈과 활력을 소멸시킬 것이라는 진단도 들린다. 국민소득 2만달러를 바라보는 21세기 한국 땅에 제3, 제4의 장발장이 잇따를 것을 예고하는 우울한 전망이 아닐 수 없다. 청년들의 일자리 만들기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우리 경제의 핵심 화두이다. 대통령을 위시해 경제 전문가라고 칭하는 많은 이들이 이 난제를 놓고 저마다 해법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그만큼 어렵다. 그렇더라도 기업과 정부, 그리고 정치권 모두가 힘과 지혜를 모아 반드시 풀어야 한다. 경제이론에 ‘오쿤의 법칙’(Okun's law)이 있다. 이 법칙대로라면 실업이 늘어나면 성장이 둔화된다. 그 결과 사회 전체가 나눌 수 있는 ‘파이’는 줄어들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만큼 더 힘들어진다. 실업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장발장의 비극이 거듭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장발장에서 ‘마들렌’으로 거듭나게 한 ‘미리엘’ 신부의 자비와 관용이 오늘같이 추운 날 더욱 두드러지게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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