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내놓은 8,000억원 기금에 대한 관리방안을 놓고 정부 내에서도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부가 과정과 절차를 관리해줄 필요가 있다”고 천명한 만큼 최소한 절차적 차원에서라도 정부 개입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리방안이 국민들을 납득시키지 못할 경우 비난의 화살이 되레 정부로 향할 수 있다는 게 고민거리다. 22일 관련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 청와대와 총리실을 주축으로 기금처리방안을 논의 중인 가운데 기획예산처를 통해 세부방침을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변양균 기획처 장관은 2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실무 수준에서 알아보는 단계”라고 밝히기도 했다. 일차적으로는 명망 있는 인사들과 시민단체들이 참여한 민간위원회를 발족시켜 기금을 관리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떠오른다. 그러나 이에 참여할 기관이나 인사를 어떻게 뽑아야 ‘공공성’이 확보될 수 있는가 하는 게 문제점으로 남아있다. 정부 차원에서 기금관리를 맡는 방안도 가능하다. 다른 국가기금이나 예산과 별도로 수입과 지출내역 및 운용목적을 명기한 ‘삼성기금’(가칭)을 마련해 운용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정부가 이를 담당하려면 기금운용의 근거가 될 신규법령을 마련하는 한편 전담부처와 관련조직을 선정하는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예 예산이나 국가기금에 삼성기금을 포함시키는 방안도 원칙상으로는 가능하다. 기획처의 한 관계자는 “현재 국가기금의 상당수는 재원으로 ‘기부금’을 받아들일 수 있어 법적으로만 따진다면 가능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즉 세외수입의 형태로 국고에 환수, 정부재정으로 쓰거나 국유재산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기부주체인 삼성이 “국가에 기부하겠다”는 의지를 먼저 뚜렷이 밝혀야 한다. 정부 측에서 보면 삼성이 돈만 내놓고 어디에 써달라는 의사를 제대로 표시하지 않다 보니 고심이 깊어지게 된 상황이다. 정부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기부금을 내는 기업ㆍ단체가 처음부터 어떤 사업이나 용도로 써달라는 입장을 명료히 밝힌다”며 “삼성이 그저 ‘잘 써달라’고 돈만 내놓은 탓에 골치 아프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