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Culture & Life] 한국인 최초 F3 우승 임채원

당장 목표는 DTM 진출 우리 기술로 팀 꾸려 해외무대 누비는 게 꿈



스포츠광이던 기계공학도 자동차 빠져 드라이버 입문 불과 4년 만에 유럽 우승컵

F1 진출까지 수십억 드는데 올라갈수록 현실의 벽 절감 국내 큰 대회 유치하기 이전



피겨의 김연아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다. 지난 25일 귀국한 그는 아쉽지만 이제 더는 현역이 아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김연아 같은 스포츠 스타를 우리는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그 답을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드라이버 임채원(30)에게서 찾아보면 어떨까. 그는 지난해 7월 영국 실버스턴에서 열린 '유러피언 F3 오픈' 자동차 경주에서 5.901㎞짜리 서킷 15바퀴(총 88.515㎞)를 30분18초735 만에 달려 덜컥 우승을 했다. F3에 진출한 지 불과 3개월 만의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임채원은 김연아와 같은 매니지먼트사(올댓스포츠)의 관리를 받고 있다.

F3(포뮬러 스리)는 최고의 자동차 경주로 통하는 F1(포뮬러 원)으로 가기 위한 전초기지. F1 바로 아래에는 GP2가 있지만 종종 F3에서 F1으로 직행하기도 한다. 한국인이 F3에서 우승하기는 임채원이 사상 최초다. 2007년 입양아 출신 최명길이 먼저 두 차례 우승했지만 그의 국적은 네덜란드다.

임채원은 지난 시즌 전체 16차례 레이스에서 우승 한 차례와 준우승 세 차례 등으로 종합순위 5위에 올랐다. 종합순위 1위는 슬로바키아의 리카르드 곤다(20). 곤다가 아홉 살 때부터 체계적인 드라이버 교육을 받은 반면 임채원은 스물 다섯이던 2009년에야 자동차 레이싱에 입문했다. 이후 불과 4년 만에 유럽 무대에서 우승컵을 들었으니 F3 자동차의 속도(최고 시속 260㎞)만큼이나 어마어마한 성장속도다.

한국인 최초의 F1 드라이버라는 꿈에 성큼성큼 다가서고 있는 임채원을 최근 서울 통일로 서울경제신문 본사에서 만났다. 1년에 10개월을 해외에서 보내는 그의 꿈은 단순히 F1에 진출하는 것 이상이었다. "언젠가 한국인과 한국 기술로 꾸린 레이싱팀을 만들어 해외 유명 레이스에 출전할 겁니다. 그러려면 더 좋은 드라이버가 되는 게 우선이죠. 레이스만 잘하는 게 아니라 타이어 테스트나 차량 개발에도 참여하는 엔지니어 같은 드라이버요."

◇서울대 출신 드라이버, 한국인 최초로 F3 우승=임채원에게는 늘 '서울대 출신 드라이버'라는 수식이 따라붙는다. 그는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2004학번이다. 재수해 한양대 건축공학과를 갔다가 한 달 만에 자퇴하고 삼수 만에 서울대에 들어갔다. 대학 동기들 중 다수는 자동차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드라이버라는 직업에 후회는 없을까. 임채원은 "그런 생각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오늘 하루 불태우고 내일 없어져버려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고 말할 때는 왠지 무섭기까지 했다.

그의 원래 꿈은 축구선수. 꼭 축구가 아니라도 스포츠 분야에 종사하려고 했단다. 산악자전거와 스노보드를 좋아하는 스포츠광에 스피드광이기도 한 임채원은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면서 자동차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2010년 국내 스톡카(양산차를 개조한 차량) 레이싱인 CJ 슈퍼레이스를 통해 드라이버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그해 신인상을 받고 이듬해 일본 슈퍼 포뮬러주니어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포뮬러는 바퀴가 차체 밖으로 튀어나온 경주전문 자동차를 말한다. 임채원은 2012년에는 아시아 포뮬러르노로 활동영역을 넓히더니 지난해 4월 초고속으로 유럽에 진출했다. 스페인 유명 팀인 에밀리오데비요타에 접수한 테스트를 단번에 통과했고 유럽 첫 시즌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우승까지 밟았다. 최근에는 에밀리오데비요타와의 재계약에도 성공했다.

임채원은 "우승까지는 생각하지 못 했는데 레이스를 치를수록 계속 좋아졌다. 운이 좋았다면 시즌 종합순위 3위로 마칠 수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독일·포르투갈·스페인 등 유럽 8개 지역을 돌며 한 대회에 두 차례씩 레이스를 펼쳐 포인트를 모으는 레이스가 유러피언 F3 오픈이다. 올 시즌 개막은 오는 5월2일. '레이싱 성지'로 불리는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개막전이 열린다. 현재 스페인에 머물고 있는 임채원은 "지난해 12월부터 하루 3시간씩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왔다. 올해까지 F3에서 뛴 뒤 더 큰 무대로 나갈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드라이버가 웨이트 트레이닝을 그렇게 강도 높게 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레이싱은 머리만큼이나 몸이 강해야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목 근육을 강화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F3 드라이버는 레이스 도중 중력의 3배(3G)에 이르는 압력을 받는데 목이 지탱하지 못하면 정신을 잃고 만다. 그래서 목에 무거운 바벨을 달고 오래 견디는 훈련은 필수다. 운전대를 완벽하게 컨트롤하기 위해 팔과 어깨 근육도 단련해야 하고 양산차에 있는 것보다 훨씬 무거운 브레이크를 순간적으로 밟기 위해서는 발목 등 하체도 튼튼해야 한다.

◇1년에 5억~6억원 드는 레이싱, 스폰서만 있다면=F3에서 우승도 하고 종합순위 5위에 올랐으면 상금도 꽤 챙겼을 것 같다. 하지만 임채원은 "지난해 수입은 0원이었다. 소속팀에서 나오는 돈도 없다"고 했다. 그는 "F3 드라이버는 1년에 5억~6억원을 쓰기만 할 뿐 벌지를 못한다"고 말했다. 드라이버의 최고 연봉이 2,700만달러(약 287억원)에 이르는 F1과는 너무 다르다. 임채원은 "드라이버 한 명이 F1에 진출하기까지는 수십억원이 드는 게 보통이다. F1은 하루 테스트를 받는 데만도 1억5,000만원"이라고 설명했다. "F1 팀들은 드라이버를 뽑을 때 얼마나 자본을 끌어올 수 있는지를 따진다"는 것이다.

임채원이 포뮬러 레이싱에 뛰어들어 얻은 결론은 이것이다. "실력도 되고 체력도 되고 자본이 있으면 F1 드라이버가 될 수 있다. 이 중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자본이다." 그는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올라오기는 했는데 올라갈수록 현실의 벽이 높게 느껴진다"고 털어놓았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아버지가 임채원을 뒷바라지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어려움이 많다. 기업의 후원 없이는 언제까지 F1 드라이버의 꿈을 이어갈 수 있을지도 알 수가 없다.

임채원은 좌초된 F1 코리아 그랑프리를 포함해 국내 모터스포츠 환경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국내에 모터스포츠 저변이 거의 없었는데 갑자기 최고 경기인 F1을 갖고 와서 한다는 게 처음부터 안 맞았던 것 같아요. 자동차를 만드는 3사(도요타·혼다·닛산)의 투자로 체계가 잡힌 일본 모터스포츠는 드라이버가 자국에서만 잘해도 얼마든지 세계 무대로 나갈 수 있게 돼 있거든요. 우리도 꼭 F1처럼 큰 대회를 개최하는 데만 신경 쓰기보다 국내 실정에 맞게 '판' 자체를 키워나가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레이싱계의 손흥민을 꿈꾸다=임채원은 F1 드라이버가 목표지만 자신의 꿈을 F1에만 국한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F1이 최고이기는 하지만 F1만 최고인 것은 아닙니다. 투어링카(양산차를 경주용으로 개조한 것)의 F1으로 불리는 무대에 가는 게 당장의 목표입니다."

투어링카의 F1은 독일 투어링카마스터스(DTM)로 DTM은 슈퍼GT, GT와 함께 세계 3대 투어링카 경주로 손꼽힌다. BMW와 아우디·메르세데스벤츠가 만든 차량으로 경주를 벌이는데 유럽에서 인기가 폭발적이라 F1에서 활동하다가 DTM으로 넘어오는 유명 드라이버들도 많다. DTM은 F3와 달리 연봉도 있기 때문에 보다 안정적으로 드라이버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다.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는 손흥민처럼 임채원이 DTM에서 일으킬 센세이션을 기대해도 될까. "올해 F3에서 경험을 더 쌓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나서 기회를 봐야죠. 부상 걱정요? 그런 거 없어요. 요즘은 이렇게 재미있는 걸 왜 더 일찍 하지 않았나 하는 후회뿐이에요."


평소엔 비용부담 적은 소형 피아트 타고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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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밖에서 느낌 좋았던 차는 닛산 스포츠카


트랙에서 200㎞가 넘는 속도로 질주하는 드라이버 임채원. 그럼 트랙 밖에서는 어떤 양산차를 탈까. 뜻밖에도 그는 소형차인 '피아트500'을 탄다. 레이싱을 위해 한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입장인 임채원은 "유럽에서는 피아트500이 가장 저렴하다. 산 것은 아니고 빌려서 잘 타고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현대자동차의 스포츠카 투스카니와 기아자동차의 경차 모닝을 탔던 그는 현재는 소유하고 있는 자동차가 없다. 면허증도 '2종 자동'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면허를 따고 차를 몰기 시작한 임채원은 서울 외곽의 한적한 도로를 찾아다니며 운전기술을 익혔다.

마음껏 속도를 내다 크고 작은 사고도 많이 냈다. 그때의 임채원은 '폭주족'이었다. 임채원은 "차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7년 중고로 투스카니를 사면서부터다. 폭주도 일삼았지만 혼자서 부품들을 이것저것 뜯어보면서 공부도 많이 했다"고 돌아봤다.

드라이버가 된 뒤로 임채원이 운전해본 양산차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차는 뭘까. 운전하는 재미가 가장 좋았던 차를 물었다.

임채원의 선택은 닛산의 스포츠카 '370Z'. 그는 "스티어링휠(운전대)의 반응도 좋고 모든 게 좋았다"고 답했다. 두 번째는 폭스바겐의 소형차 '시로코R'. "엔진이 잘나가고 진짜 재미있었어요. 미션(변속기) 느낌도 빠르고 운전하는 기분이 좋더라고요. 전체적인 밸런스가 아주 괜찮은 차입니다."

임채원의 자동차에 대한 애정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그는 "평생 레이싱 업계에 몸담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드라이버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직업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세계적인 드라이버가 있어야 한국 모터스포츠도 더 발전할 수 있는 거고요. 여건이 도와주지 않아 힘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끝까지 부딪쳐야죠."

He is…

△1984년 1월 서울

△2010년 CJ 슈퍼레이스 우승

△2010년 한국모터스포츠대상 신인상

△2011년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졸업

△2011년 일본 슈퍼포뮬러주니어 우승

△2011년 한국모터스포츠대상 올해의 글로벌 드라이버상

△2013년 유러피언 F3오픈 1·11·12라운드 2위

△2013년 유러피언 F3오픈 9라운드 우승

△2013년 한국모터스포츠대상 올해의 글로벌 드라이버상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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