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백운찬 관세청장

국민 15%만 해외여행 … 면세한도 확대는 좀 더 신중해야

해외 직접구매 활성화 위해 품질보증제도·AS센터 추진

불법 외환거래 조사요원 선발… 역외탈세 차단 첨병으로



홍콩 출장을 하루 앞둔 11일 백운찬 관세청장을 서울 논현동 서울세관 사무실에서 1시간가량 만났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기도 전에 백 청장은 많은 얘기를 꺼냈다.하는 일에 비해 관세청이 주목을 덜 받는 데 대한 아쉬움 탓도 있겠지만 취임 1년을 앞둔 '국경수비대'의 수장으로서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던 것이다. 백 청장은 "관세징수에서부터 수출입 기업에 대한 지원은 물론이고 지하경제 양성화로 이목이 쏠린 불법 외환거래 단속, 마약과 밀수 등 경찰과 군에 버금가는 경계도 선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역외탈세를 찾아내는 데 관세청의 역할이 컸다"면서 "직원이 4,700명 정도 되는데 모두 제복을 입는다. 그 힘이 크다. 목표가 정해지면 일사분란하다"고 말했다. 그런 힘이 있기 때문일까. 그가 꺼낸 사업계획은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많았다. 세계적인 특송업체는 물론 우정사업본부 등과 업무협약을 맺어 '택배허브' 프로젝트를 가시화하는 것에서부터 해외직접구매 애프터서비스(AS) 센터 건립, 오일허브 지역에 대한 비관세, 자유무역협정(FTA)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중소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원산지증명 지원 등…. 이뿐만이 아니다. 백 청장은 "관세청의 가장 주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가 수출과정에서의 비관세장벽을 허무는 것인데 FTA 체결 이후 비관세장벽은 부쩍 늘었다"면서 "해외주재관이 많지 않은 게 한계이기는 하지만 민원이 발생하는 곳은 나를 포함해 직원들을 직접 보내 비관세장벽을 해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당국의 수장으로 2년째를 맞는 백 청장의 청사진을 들어봤다.

개인들이 해외 사이트에서 물건을 직접 구매하는 '직구'가 빠른 속도로 늘었다. 지난해에만 1,000만건에 규모는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백 청장은 "직구는 활성화와 악용을 막는 것 등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먼저 직구의 활성화다. "의사 친구가 의료기기 등 용품을 국내의 5분의1가격으로 들여온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백 청장은 "소비자들이 그동안 너무 비싸게 해외 물품을 샀는데 직구는 그런 부분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서 직구가 갖는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해외에서는 중저가인 옷이나 신발이 국내에 들어오면 비싼 값에 팔리는 현실을 타개하겠다는 것이다. 직구 활성화를 위해 백 청장은 "공동 AS 센터 설립과 간편한 수입신고 절차와 통관혜택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품질보증제도 시행한다. 백 청장은 "국내 소비자들이 정식으로 법인에서 수입해 높은 가격에 파는 것은 진품이라고 믿고 외국에서 직구나 병행수입으로 싸게 들여오면 위조품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진품인 경우 관세청에서 통관표지(QR코드)를 부착하고 수선 등 AS가 어려운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수입품목별로 AS 센터를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직구의 악용을 막기 위한 조치도 준비했다. 관세청은 수입한 물건이 실제 구입자에게 배송될 때까지를 추적하는 시스템을 마련한다. 그는 "직구 업자들이 한꺼번에 수입하면 면세범위를 넘어서니까 주민등록번호 등을 불법으로 수집해 마치 여러 명이 구입하는 것처럼 위조한다"면서 "인천공항 세관에 2015년까지 특송물류센터를 지어 직구를 위해 들여온 특송화물을 신속하게 처리하고 탈세도 감시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관세청은 지난해 말 국회 예산심의에서 관련 예산을 따냈다. 2015년 말까지 인천공항에 3만 5,000㎡ 규모의 특송물류센터를 지을 예정이다.

2년차인 백 청장은 새로운 사업도 하나 펼친다. 배송 인력과 시설을 잘 갖춘 우체국 국제특송과 협력해 인천공항에 아시아 물류허브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이다. "특송과 국제우편이 연계된 물류 부가가치 사업으로 관세청과 우정사업본부 간 협업의 결과입니다. 성공하면 3년간 1조원 이상의 신규 수익과 1,000명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입니다." 지나친 낙관일까. 계획만 보면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 중국으로 직접 물건을 보내는 것보다 한국을 경유하면 비용이 싸다는 점을 포착했다. 백 청장은 "미국 UPS 등 특송업체를 통해 2㎏의 화물을 중국으로 보내는 데 11만6,830원이 든다. 하지만 미국에서 인천공항까지만 UPS를 이용하고 인천공항에서 중국까지는 우체국 국제택배(EMS)를 이용하면 2만9,320원에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천공항을 거쳐 국제택배를 받으려는 물동량이 연간 312만건에 3,620억원 규모"라면서 "특송업체와 우정사업본부, 항공사와 운송업체 등 관계된 여러 회사가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럽을 비롯해 미국·영국·호주·중국·일본에서 온 화물을 중국이나 동남아·러시아·일본 등 전세계로 다시 보내려는 수요가 있는 것이다. 관세청은 이를 위해 오는 18일 우정사업본부와 업무협약을 맺고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화물을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외환거래 조사를 통한 역외탈세 근절은 백 청장이 취임 직후부터 역점을 둔 정책이다. 지하경제 양성화가 논란이 많지만 적어도 해외에 재산을 숨긴 탈세혐의자를 적발해야 한다는 데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백 청장은 "올해부터 관세청의 권한이 커져 수출입 거래뿐만 아니라 자본 거래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면서 "특별사법경찰권을 가진 관세청 인력 400명 가운데 19명을 선발해 집중교육을 마쳤고 외환조사요원으로 투입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역외탈세를 막는 전담요원인 셈이다. "앞으로도 인원을 더 선발할 예정인데 외환조사는 다른 나라에 비해 독보적으로 앞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교육이 끝난 뒤 직접 임명장을 수여할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는 작업 가운데 하나인데 불법 외환거래를 통한 역외탈세를 막겠다는 백 청장의 의지가 높다는 얘기다. 관세청은 지난해 8조1,506억원어치의 밀수 및 불법 외환거래를 단속했다. 3,774건, 5조5,917억원어치를 적발한 2012년보다 건수(17%)는 물론 건당 적발금액이 46%로 크게 늘었다. 더욱이 올해 1월부터는 관세법이 개정돼 해외에서 신용카드를 이용해 분기별 5,000달러 이상 물건을 구매한 사람의 정보를 통보받을 수 있다. 백 청장은 "해외 신용카드를 정밀 분석해 고액 사치품 등을 반입한 여행자를 선별 검사할 것"이라면서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물품구매 정보만 최소한으로 입수하고 최소 직원만 들여다보고 목적 외 사용시에는 강력히 처벌하겠다"고 말했다. 역외탈세는 지난해 뉴스타파의 보도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산의 해외 은닉 사실이 알려지며 주목을 끌었다. 뒤이은 검찰과 국세청의 재산환수가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백 청장은 역외탈세를 제대로 잡으려면 그전에 외환조사를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고하지 않는 외환거래가 들어나고 나간 돈이 맞지 않는 외환거래를 분석해야 세금을 제대로 매길 근거가 된다는 설명이다. 다만 국세청과 관세청의 협력은 필수다. 정보를 공유하고 있지만 백 청장은 아예 전산을 통합해 수시로 서로의 정보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외국에서 물건이 들어올 때 관세청은 관세품목 해당하는 금액만 조사하게 됩니다. 일부 기업은 이 과정에서 수입 금액을 부풀려 국내에서 세금을 낼 때 수입 금액을 비용으로 처리해 세금을 회피하고 있어요." 결국 물건이 수입될 때부터 관세청과 국세청이 함께 조사한다면 세금 탈루가 훨씬 줄어들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근 거론되고 있는 해외여행객에 대한 면세범위 확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피력했다. 해외여행을 갔다가 귀국할 때는 1인당 구매한 물품액이 미화 400달러 이하에만 면세를 준다. 1996년에 정한 것인데 국민소득이나 물가상승 등을 감안해 더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백 청장은 물론 면세점 확대 필요성에 대해 일부 공감은 했다. 그는 "검토할 단계는 된 게 아닌가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백 청장은 전체 국민의 여론을 의식하며 결론을 되돌리는 분위기였다. 해외여행을 하지 못한 다른 국민과의 형평성을 더욱 강조한 것. 그는 "면세한도가 400달러라지만 술과 담배, 향수 등 각각 하나씩은 제외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한도는 1,000달러"라면서 "2012년 정부 통계를 보면 해외여행을 하지 않은 국민이 85%인데 15%의 국민을 위해 85% 국민이 비싼 값에 해외 물건을 산다면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또 면세제도에 대한 취지도 강조했다. "우리가 면세품을 인정해주는 제도 취지는 외국에서 생활용품을 싸고 편하게 사라는 취지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국민들은 면세점에서 물품을 사서 국내에 가져오는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가방 하나에 200만~300만원 하는데 400달러 가지고는 살 수 없다고 하는 거예요. 당초 취지에 맞춰 면세범위를 본다면 400달러도 턱없는 수준은 아닙니다." 국민정서와 당초 취지 등을 감안해 면세범위를 확대하는 게 쉽지 않다는 얘기로 들렸다.

He is …


△1956년 경남 하동 △진주고, 동아대 법대, 미국 위스콘신대 대학원 공공정책 및 행정학, 서울시립대 세무학 박사 △1980년 행정고시 24회 △2001~2004년 재정경제부 조세지출예산과장·소득세제과장 △2006년 재정경제부 근로장려세제(EITC)추진기획단부단장 △2008~2010년 기획재정부 관세정책관·재산소비세제정책관 △2010년 조세심판원장 △2011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2013년~ 26대 관세청 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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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지 검증 정보, 세원자료로 활용 안해 … 관세청 적극 이용하세요"

지난 2004년 칠레와 첫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것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의 FTA 역사는 어느덧 10년이 됐다. 특히 2012년과 2013년 각각 미국, 유럽연합(EU)과 FTA를 체결하면서 관세철폐에 따른 수출확대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비관세장벽의 확대와 원산지 검증의 문턱이다. 백운찬 관세청장은 "FTA로 관세장벽이 철폐됐는데 그 효과를 오롯이 보기 위해서는 비관세장벽도 넘어야 하고, 특히 원산지 검증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칫하다가는 원산지 검증 등의 벽에 갇혀 과실을 딸 수 없다는 얘기다.

관세청이 중소기업 등을 상대로 제대로 된 원산지 검증을 할 수 있도록 각종 프로그램을 만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더욱이 최근에는 원산지 검증 요구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EU가 관세청에 국내 수출기업 원산지 검증을 요청하는 사례는 2011년 67건에서 2013년 2,450건으로 증가했다. 관세청을 통하지 않고 현지 당국이 직접 엄격하게 검증하는 미국도 증가 추세다. 백 청장은 "지난해 관세청이 파악한 미국의 국내 수출기업 원산지 검증은 90여건으로 보인다"면서 "이 중 2건 정도가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2건에 해당하는 기업은 원산지를 입증할 서류를 5년간 보관하지 못했거나 제출했더라도 미국 관세당국이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관세청은 보고 있다.

백 청장이 아쉬워 하는 것은 국내 수출기업이 관세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 백 청장은 "미국처럼 직접 검증하는 경우 국내 수출업체는 잘못이 없으면 그나마 우리와 협의하지만 잘못한 기업은 검증 받은 사실을 숨기려 한다"면서 "우리가 세금을 쪼아내는 기관이 아니고 도와주려는 것인데 우리에게 알리면 더 제재를 받을까 봐 겁을 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중소기업들 사이에서는 원산지 검증 관련 자료를 관세청에 주면 관세청이 나중에 이를 세원자료로 활용, 결국 세원이 노출된다고 보는 것 같다"면서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못박았다.

납품 대기업에 정보 노출을 꺼려 원산지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례도 있다. 백 청장은 "원산지 검증을 받는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납품하는 부품을 어디에서 원료를 갖고 와서 인건비를 얼마 들여 만들었는지가 담긴 원가자료 제출을 꺼린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관세청은 직접 중소기업과 접촉해 원가자료를 본 뒤 이를 대기업이나 다른 곳에 공개하지 않고 국산이 맞다는 인증을 해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또한 'FTA-PASS'라는 시스템으로 중소기업이 품목 숫자만 넣으면 원산지 비율을 계산해주는 프로그램도 내놓았다.

대담=이철균 경제부차장 fusioncj@sed.co.kr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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