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수사역량 강화와 전문성 제고를 위해 올해 초 도입한 수사경과(警科)제가 업무분담 문제로 혼선을 빚고 있다.
경찰의 업무분담 관련 규정이 미비, 경합범죄가 발생하면 부서간 `업무 떠넘기기'가 우려되고 있으며, 지구대의 인식 부족으로 인해 야간사건 인계시 기존처럼 형사계로 몰리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수사경과제의 성공적인 시행을 위해서는 경찰서 내 각 부서의 우호적인 협조만 기대할 것이 아니라 경합범죄에 대한 더욱 명확한 규정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수사경과제 도입 초기 `혼선' = 지금껏 형사들은 폭력ㆍ강도ㆍ살인 등 강력범죄부터 재산 관련 경제범죄, 변사ㆍ화재 등 발생 범죄에 이르기까지 백화점식으로사건ㆍ사고를 다뤄왔다.
그러나 지난 1일 수사경과제 도입 후 형사계와 수사 2계ㆍ조사계 등 `계' 단위조직에서 강력수사팀ㆍ지능수사팀 등 `팀' 단위로 재편됐다. 고소ㆍ고발 등 수사 단서별 체제도 강ㆍ절도와 사기, 횡령, 환경 등 주요 죄종(罪種)별 체제가 됐다.
하지만 부서간 업무분담이 명확하지 않아 경합범죄는 법정 형량이 중한 범죄 담당 팀에서 처리한다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사건 해결의 실익이 없는 경우 부서간 떠넘기기 현상이 우려되고 있다.
예컨대 강간 사건의 경우 강력사건으로 분류돼 강력팀 소관이지만 피해여성에대한 수사상 어려움 등을 감안하면 여성청소년계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무전취식 후 폭행 사건의 경우도 사기 사건이면서 폭행 사건에 해당돼 경제팀ㆍ지능팀과 폭력팀간의 떠넘기기 경쟁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경찰서로 사건을 인계하는 지구대의 인식부족도 문제점으로 야간에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 담당 팀을 구분하지 못해, 기존처럼 당직 형사계에 사건을 가지고 오는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선서 형사계 관계자는 "수사경과제로 인해 고소ㆍ고발 사건도 처리하면서 야간에 지구대에서 가지고 온 사건들도 업무분담없이 처리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 명확한 규정 마련 시급 = 서울경찰청은 이같은 점을 감안해 최근 서울 각 일선 경찰서에 서장과 수사과장 앞으로 공문을 보내 업무분담상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해 의견을 올리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각 과장이 업무분담 문제에서 서로 협조를 통해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도록 권고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어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시범적으로 수사경과제를 실시한 한 일선 경찰서 수사과장은 "당시 지구대 직원이 사건을 가지고 오면 부서마다 떠넘기기에 바빠서 해당 부서를 찾기 위해사건을 결국 서장에게 보고하는 일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다른 경찰서 형사계 관계자는 "과장끼리 업무 협조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 새인물이 오면 또 다시 논의를 할 것이냐"며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일관된 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임준태 교수는 "업무 분담 문제는 수사경과제 도입 초기과정에서 나타나는 건설적인 부작용"이라며 "세밀한 규정 마련 등을 통해 문제점을해소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또 "사람이 하는 일이라 사건의 실익이 없거나 단서가 부족하면 각과별로 사건을 떠넘기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이 경우 과장의 재량도좋지만 경찰서장이 관리자로서 문제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상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