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6월 20일] PB제품과 소비자의 신뢰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우리 회사 유통업체 브랜드(PB) 라면이 실제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는 않아요. 마트와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하니까 납품하는 것이지…." 최근 대형마트의 브랜드를 달고 판매되는 라면을 제조하는 한 식품회사의 관계자에게 PB 제품에 대한 질문을 하자 대뜸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라면회사로 잘 알려진 이 식품회사의 PB 라면 비중이 자사의 대표 라면 매출의 5%도 채 안 된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PB보다는 궁극적으로 제조업체 자신의 브랜드를 키워나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답변에서는 혹시 단순히 PB 납품회사로만 부각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제조업체의 이 같은 생각이 PB 제품 품질에 대한 의심을 낳기에 충분하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자기 브랜드를 걸고 매장에 내놓는 만큼 고품질에 주력하고 있다고 강변하지만 실제 자사 브랜드를 키우는 데 욕심이 많은 제조업체들이 PB 제품의 품질을 높이는데 많은 공을 들일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PB 시장이 이미 활성화돼 있는 서유럽과 국내시장은 분명 다르다. 국내의 경우 상위 제조업체들은 자체 브랜드를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들 회사는 유통업체들과의 관계와 유통환경 변화를 외면할 수 없어 PB를 납품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것도 유통업체들의 입맛에 맞는 가격대에 맞춰 제품을 만든다. 제조사의 마케팅 비용 절감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유통사들 입장에서는 일반 제조업체 브랜드보다 PB 제품을 팔아 남기는 마진율이 많게는 10%포인트 이상 높다. 품질이 담보되지 않은 한 PB를 유통업체들이 주장하는 '소비자 선택폭을 넓히기 위해 저렴하게 내놓은 제품'으로만 바라보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PB가 향후 유통시장의 대세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흐름 속에서 제조사와 유통업체들이 소비자를 보다 우선시하는 자세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PB의 품질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로마제국의 은화 '데나리우스'는 네로 이후 황제들이 재정 적자를 벗어나기 위해 실제 은 함유량을 지속적으로 낮추면서 화폐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다. 이것이 결국 로마제국의 멸망의 도화선의 되고 말았다. 유통ㆍ제조업체들은 할인점에서 PB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는 어린 자녀를 둔 주부들의 지적에 귀를 기울여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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