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통신시장 새틀을 짜자] 1.미래로드맵 시급하다

지난 10월 투자설명회(IR)를 하기 위해 런던을 방문했던 국내 통신업체의 한 CEO(최고경영자)는 일부 펀드매니저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일찍이 투자자들에게 한국의 통신주를 과감히 매입하라고 권고했다가 큰 낭패를 당하고 말았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한국 IT(정보기술)산업의 미래를 낙관했지만 당국의 정책 부재가 잘못된 결과를 초래했다는 주장도 곁들여졌다. 한국 통신산업이 미래의 활로를 찾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다. 정부가 이끌어온 차세대 IT 성장엔진도 하나같이 외풍에 흔들리며 뒤뚱거리고 있다. 이에 따라 미래 성장동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위기감마저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통신산업은 진입시점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전형적인`타임 투 마켓(Time to Market)`산업이다. 위기해소 방안을 하루빨리 마련하지 못한다면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다. 이제라도 국가 차원의 에너지를 한곳에 모아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 나서는 통신산업의 로드맵을 다시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성장성 한계 부딪혔다= 한때 호황을 누리던 통신시장은 지난해를 정점으로 성장이 급속하게 둔화되면서 양적 팽창국면을 마무리하고 있다. 유선사업자의 경우 유선전화가 사양산업화하면서 시장이 쪼그라들고 있으며 초고속인터넷 마저 가입자 1,000만명을 돌파한 이후 성장세가 한풀 꺾인 상태다. 온세통신과 두루넷은 법정관리를 받고 있으며 데이콤 역시 국제전화, 시외전화, 전용회선이 인터넷에 밀려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급성장해왔던 이동통신 부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가입자 수가 지난 2002년 3월 3,000만명을 돌파하면서 증가세가 주춤해 부가서비스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부가서비스도 주파수 대역이 좁아 트래픽에 한계를 보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책 혼선에 허송세월 보낸다= 부처간 이해관계 대립과 장기적인 정책 부재는 업계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세계 1호로 추진중인 위성DMB사업은 예정대로 내년 5월에 서비스될지 의문이다. 아직 서비스 개념규정이 없는데다 허가ㆍ관할기관, 관련법 제정도 뒷받침되지 않은 채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는 자기 주장만 펴고 있다. 통합된 방송통신위원회가 가허가를 내준 이웃 일본이 부러울 따름이다. 멀티미디어 데이터가 오가는 3세대 이동통신 IMT-2000 서비스는 연말 약속시한에 쫓긴 나머지 그저 시늉만 하고 있을 뿐이다. 케이블 방송업체(SO) 큐릭스는 지난 6월 디지털 전환시험을 마친 후 국내 처음으로 디지털 전환신청을 관계 당국에 냈으나 5개월이나 지나서야 허가를 받았다. 방송법의 개정 지연과 정통부의 기술기준, 요금기준 때문에 차질을 빚은 것이다. 이밖에 지상파 디지털방송의 전송방식 문제 등 곳곳에서 마찰이 빚어져 사업자와 국민들만 애꿎은 피해를 입고 있다. 무선통신 구간에 인터넷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휴대인터넷 사업도 허송 세월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2.3GHz 주파수 대역을 휴대인터넷용으로 분류하면서 올해까지 표준과 사업자 선정기준을 마련키로 했지만 계속 미적대고 있는 실정이다. ◇미래청사진 마련돼야=한국의 통신시장이 주춤거리는 사이에 차세대 시장 주도권을 일본이나 중국에 빼앗길 것이라는 우려마저 높아지고 있다. 일본은 이미 인터넷 구축 과정에서 기간망에 이어 가입자망 구축까지 진행하는 등 탄탄한 고속망을 자랑하면서 조만간 한국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일본 통신업계는 무선 IP폰을 기반으로 IP시장 개척에 전략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중국 통신산업도 빠른 성장속도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통신업계 전반의 수익성을 폭 넓게 견인할만한 새로운 성장사업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책당국은 부처간 이해관계를 벗어나 대승적인 차원에서 한국을 먹여 살릴만한 신사업을 발굴하고 이를 앞장서 이끌어 나가는데 주력해야 한다. 과거처럼 정책이 기업의 발목을 잡는 구태는 더 이상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까를로 꼬띠 한국알카텔 광전송사업본부장은 “한국은 국민적 합의아래 정부 주도로 국민, 장비업자, 서비스업자 모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통신산업을 이끌어 왔다”면서 “차세대 산업에서도 모두가 사심을 버리고 윈-윈(Win-Win)게임을 벌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기술 발전과 경제구조 변화에 따른 통신시장 환경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면 글로벌 통신파워는 그저 한낱 신기루처럼 우리 눈앞에서 사라질 수 밖에 없다. 지금은 한국을 통신강국으로 도약시킨`제 2의 CDMA신화`를 새롭게 일궈내야 할 시점이다. <특별취재팀 ss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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