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M. 케인즈 vs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20세기 세계경제학계의 두 거봉이다. 평생을 건 자신의 학문적 이론이 이들의 경우처럼 상대측 학설의 부침(浮沈)에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 길을 걸어간 경우도 드물다.
1974년 겨울 스톡홀롬. 스웨덴 한림원은 그동안 케인즈의 그늘아래 세계 경제학계 비주류로 평가되던 하이에크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안긴다. 지난 40년간 케인즈에 눌려 학계 변방에 머물던 하이에크는 이로써 일약 경제학 주류 이론의 한가운데 서며 이후 세계 경제에 지각변동을 일으킨다.
케임브리지대 동문이며 경제 이론의 맞수로서 먼저 학문적 승리를 거둔 측은 케인즈다. 그의 유효수요론을 이론적 토대로 한 뉴딜정책은 1929년 대공황으로 빈사 상태에 빠진 미국 경제를 일으켜 세우며 이후 각국 경제에 케인즈 바람을 일으켰다.
비슷한 시대 하이에크는 저서 ‘예종에의 길’을 통해 케인즈식 정부통제는 독재화와 노예화를 낳을 뿐이라고 외쳤지만 목소리는 공허했다. 1950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에게 일자리를 내준 대학은 딱 한 곳, 시카고대 뿐이었다.
거침없어 보이던 케인즈 이론의 빛이 바래기 시작한 건 전후(戰後) 그의 이론에 따라 중앙 통제식 경제 정책을 시행한 나라들의 잇단 실패 사례가 드러나면서부터다.
케인즈이론이 설명하지 못한 스태그플레이션과 함께 미국ㆍ영국을 필두로 한 세계경제의 급격한 침체를 계기로 경제 이론의 무게 중심은 1970년대를 지나며 빠르게 하이에크쪽으로 옮겨간다.
특히 1990년대 들어 통제 경제의 전형인 공산주의가 몰락한 것은 하이에크의 시장 경제론을 상대적 대안으로 자리매김시켰다.
반전(反轉)의 지금까지 결과는 하이에크주의의 승리다. 그러나 그것을 단정하는 데는 아직 주저하고픈 면도 없지 않다. 특히 그의 이론에 사상적 체계와 뿌리를 둔 미국 주도형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문제점은 적지 않은 부작용을 토해내고 있다. 경제에서 지금의 선(善)이 미래의 선이 될 수 있는가를 말하기에는 아직도 수많은 변수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주도냐 정부주도냐, 하이에크와 케인즈가 지금 한국사회에서 다시 살아나 논쟁의 불씨를 지피고 있는 걸 특수한 한국적 상황 때문으로 탓해보자.
개발 독재 성장기를 거쳐 IMF사태, 시장 경제 체제에 이르기까지 압축된 경제 성장 시기를 내처 달려온 한국경제사에서 한번은 짚어볼 수 있는 대목임을 그리 인정 못할 바도 없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양이 아닌 질적 담론, 논쟁의 결과에 따른 생산성의 정도가 문제다. 정부통제체제의 문제를 지적하며 이미 결론이 난 사안으로 규정하는 시장 주도론자들의 공세속에 집권층의 정부 주도 정책들은 정당성 이전에 정책 집행 과정의 미숙으로 지지 세력일 수 있는 서민층으로부터조차 박수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시장의 공정한 질서 유지를 위한 정부 개입의 정도에 대한 원칙과 기준부터 오락가락하는 아마추어리즘이 소모적 논쟁, 나아가 온 나라를 분열로 몰아가는 악순환을 낳고 있는 거다.
케인즈와 하이에크가 살아 지금 한국 경제를 지켜 본다면 뭐라 말할까. 자신들이 과거 펼쳤던 논쟁에 다시 핏발을 세우고 있는 상황에 먼저 눈이 휘둥그레 지지 않을까. 그리고 다음은 이런 탄식으로 이어지지 않을 듯 싶다.
케인즈-“내가 좌파인가. 한국내 진정한 케인지언은 과연 있나”
하이에크-“시장 자체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