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량배의 가랑이 밑을 기어서 지나간 한신은 후일 대장군이 된다. 한때의 굴욕은 비겁한 일로 기록되지 않고 인내와 처세의 상징으로 기록되었다. 박영훈이 우변의 백을 구차하게 연결하는 쪽으로 노선을 정한 것에 대한 평가는 섣불리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검토실의 고수들은 하나처럼 논평을 피했다. 방식 자체는 굴욕적이지만 그것이 최선이 아니었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모든것은 이 바둑의 최종 결과가 말해 줄 것이다. 박영훈이 패한다면 그의 굴종은 굴종으로 끝날 것이고 그가 승리한다면 그는 한신처럼 높이 평가될 것이다. 흑89는 사소해 보이지만 의외로 큰 자리였다. 차후에 참고도1의 흑1 이하 5가 절대선수로 보장되었다. 더구나 흑은 이 수순들을 결정적인 순간에 팻감으로 사용할 수가 있다. 흑91은 너무도 기분 좋은 자리. 이 수가 놓이자 흑의 우세를 공공연히 말하는 기사들이 많아졌다. 백92는 박영훈이 진작부터, 그러니까 우변을 굴욕적으로 넘어갈 때부터 노리던 침입이다. 하변을 단순하게 참고도2의 백1로 지키는 것은 흑2를 당하여 백의 비세가 확실해질 뿐이다. 흑93은 우세를 의식하고 튼튼하게 지킨 수. 흑95 역시 분란을 피한 수순이다. "이세돌이 셔터를 내리고 있습니다."(조한승) 백98은 셔터를 내리는 상대의 팔을 완강하게 붙잡고 늘어진 수. 박영훈은 어떻게든 시빗거리를 만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