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50대의 얼굴/김유상 투자신탁협회장(로터리)

공자님은 「논어」에서 40대는 불혹이고 50대는 지천명이라고 말씀하셨다. 나이와 관련하여 고금에 수없이 인용되는 아주 낯익은 구절이다.그러나 이제 60대를 바라보는 오늘날의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과연 지천명, 즉 하늘의 뜻을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를 자문해볼 때 그만 자신이 없어지고 만다. 물론 이 말을 일종의 철학적 의미 정도로만 받아들이면 그뿐일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쩐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따라서 실제 공자시대의 50대는 정신적으로나 육제적으로 현재의 80대 정도에 해당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면 다소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와같이 시대가 달라지면 세월의 흐름이나 세태의 변화에 따라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풍기는 느낌이 크게 다른 것 같다. 20대 시절에 바라본 당시의 50대와 그 나이가 된 현재의 나 자신을 비교해보면 외면적으로는 옛날 사람들이 훨씬 더 늙어 보였던 것 같이 생각된다. 그 이유는 아마도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나 노동의 질적인 차이, 그리고 섭취하는 음식물의 영양상태 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옛날의 50대 얼굴은 현재의 그것에 비해 더 완숙하고 더 점잖으며 품위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는 당시의 50대들이 격동의 세월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 몸소 체득하고 깊은 사색 등을 통해 얻은 철학적 사고와 인생관이 얼굴에 그대로 배어나온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반면 현재의 우리는 물질의 풍요 속에서 편한 것만 찾고 쉬운 것만 행하여 절실하게 사고하고 사색하는 것이 부족한 까닭에 사상과 인생관의 빈곤함이 그 얼굴에 그대로 나타난다고 본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현재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변화와 개혁이 요청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시대일수록 자신의 뚜렷한 주관이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주체가 되어야 할 우리 나이대에서조차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경우를 흔히 본다. 과연 이것마저도 헛먹은 나이를 탓하지 아니하고 세태의 변화에만 전적으로 책임을 돌려도 좋은 것인지 우리 세대가 스스로를 깊이 반성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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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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