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미국 경제가 함께 침체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탈동조화(decoupling)’ 이론은 여전히 유효한가.
한국의 대미 수출 비중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경제둔화에 따른 파급효과 등 영향력도 예전만 못하다는 분석은 그동안 줄기차게 나왔다.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져도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 자생력을 갖췄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두 번째 수출 대상국인 미국의 경기가 급랭하거나 장기화하면 한국 경제 역시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최근에는 힘을 얻고 있다. 한국 경제가 미국과 디커플링 관계를 유지하기에는 아직 무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미국에 대한 수출은 457억7,000만달러로 전체 수출 3,715억3,900만달러의 12.3%를 차지했다.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에서 미국의 비중은 지난 2002년 20.2%에 달했으나 2004년 16.9%, 2005년 14.5%, 2006년 13.3% 등으로 계속 하락해 지난해에는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대미 수출 비중이 감소하면서 일각에서는 미국의 경기침체가 수출 등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여전히 나오고 있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또한 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G7 재무장관회의 확대회의에서 “한국의 대미 수출비중은 지난 10년간 거의 절반으로 줄고 중국과 아세안 국가들의 비중도 감소하는 등 무역경로를 통한 파급효과가 크게 약화되고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른 아시아 금융기관들의 직접적 피해는 제한적”이라며 아시아 경제의 미국 경제에 대한 탈동조화를 거론했다.
하지만 비중은 줄었어도 미국 경제의 영향권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송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 비중이 줄었다고 해도 중국 등 개발도상국을 통해 미국에 수출되는 물량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대미 수출 비중이 감소한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밝혔다. 피터 모건 HSBC 이코노미스트 역시 “중국으로의 수출은 단지 거쳐가는 것일 뿐이고 중국은 조립공장의 역할만을 하고 있다”며 “아시아의 수출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8%인데 완성품이 아닌 부품까지 합하면 실제 비중은 30% 이상”이라며 탈동조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같이했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높고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 등 아시아 지역도 미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아 미국이 불경기에 빠진다면 우리 수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폴 시어드 리먼브러더스 수석연구원은 “미국 소비 급락으로 아시아의 수출 다각화는 계속될 것”이라면서 “그럴수록 아시아는 국제 경제에 더욱 연결될 것이고 결국 이는 미국 경제와 탈동조화할 수 없다는 의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