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암살을 다룬 영화 '인터뷰'의 상영 취소로 이어진 제작사 소니픽처스 해킹 사건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가운데 적절한 보복조치를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18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소니픽처스에 대한 해킹은 국가안보에 중요한 문제"라며 "사이버 공격의 범인에 대해 이에 상응하는 대응조치를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정교한 집단'이 악의를 갖고 이번 사이버 공격을 벌인 증거가 있다"면서도 북한의 배후설에 대해서는 "확인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미국 언론들은 정부 당국자들의 말을 인용해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이번 사이버 공격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결론을 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 등은 미 연방수사국(FBI)이 해킹을 시도한 인터넷 IP 주소가 북한의 것이라는 증거를 포착했으며 곧 이번 사이버 공격에 북한이 관여했음을 공식 발표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북 보복조치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날로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설에서 "이번 일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라며 강경한 대응을 주장했고 에드 로이스(공화·캘리포니아) 미 하원 외교위원장도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백악관도 이번 사이버 공격과 관련한 대책회의를 매일 여는 등 보복조치를 강구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미 언론들은 금융제재가 유력한 방안이라고 전하고 있다. 지난 2005년 돈세탁 혐의로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에 있는 2,500만달러 규모의 북한 계좌를 동결함으로써 북한의 돈줄을 차단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전문가인 잭 프리처드 전 한미경제연구소장은 "북한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분야는 금융"이라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북한에 휴대폰 200만대를 판매해 약 5억달러의 수익을 올린 이집트의 이동통신사 오라스콤 등 북한에 진출한 해외 기업에 대해 금융거래를 제한하는 방법도 거론된다.
북한의 기반시설에 대한 보복 사이버 공격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시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하지만 사이버 공격은 북한의 추가 공격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고 미국의 대북 정보수집 능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정부가 이를 실행할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 유엔 차원의 규탄 결의안 채택도 옵션에 넣을 수 있으나 북한에 실효적 타격을 주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실행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 모든 제재방안이 효과를 거두기 위한 변수는 중국이다. 그동안 북한 문제와 관련된 거의 모든 제재가 중국의 협조 없이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금융제재만 해도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으로 서방의 제재를 받는 이란이나 러시아와 달리 철저히 고립된 경제 노선을 걷고 있는 북한은 2005년 이후 주요 자금을 중국 은행으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역시 미국과 사이버 안보 문제로 마찰이 계속되고 있어 미국의 뜻대로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헤리티지재단의 중국 전문가 딘 쳉은 블룸버그통신에 "이번 해킹 과정에 중국의 영역이나 IP 주소가 연관됐음을 미국이 증명해냈을 때만 중국의 협조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며 그렇다고 해도 그 폭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해킹 사건을 계기로 미국 정부 및 기업 전반에서 사이버 보안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블룸버그와 WSJ 등이 보도했다. 네트워크 보안업체 블루코트시스템의 마이클 페이는 "소니픽처스 해킹은 사이버 공격으로 대기업의 의사결정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주요 기반시설도 사이버 공격의 목표가 된다면 정부의 의사결정이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느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