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 고어 사건'에서 제소자와 피소자의 이름이 달랐어도 내가 같은 의견을 냈을까? 자문하고 그럴 것이라고 자답했다. 그러나 사람들이란 자신도 잘 속이는 법인데, 정말 솔직한 대답은 나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양심적이긴 하지만 다소 고지식한 판사들은 '부시 대 고어 사건' 판결로 자신들이 나라를 구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론 정치를 망치는 결과를 초래했다...법대1학년이면 누구나 배우는 게 '회피'와 '정치적 문제' 원칙들이다. 법원은 이 원칙들에 의해 정부의 다른 영역(정치)에 속하는 소송을 각하할 수 있는 것이다"
전자는 지난 2000년 미국 대선 때 5대 4로 플로리다주 재검표를 중단시킨 대법원 판결에서 소수의견을 냈던 스티븐 브레이어 대법관(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지명)이 24일 모교인 스탠포드대에서 열린 '사법 적극주의' 세미나에서 한 말이라고 워싱턴 포스트가 25일 보도했다.
후자는 오리건대에서 헌법을 가르치는 가레트 엡스 교수가 역시 2000년 대선 때대법원의 개입과 관련, 이 신문 24일자에 '다시 해선 안됩니다. 판사님들'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의 일부다.
두 사람과 말과 글은 미국의 올해 대선이 2000년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법원에 의해 당선자가 결정되는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많이 제기되는상황과 관계있다.
2000년 대선과 관련, 미국 언론에 등장하는 '부시 대 고어 사건'이라는 표현은조지 부시 현 대통령과 앨 고어 당시 부통령간 대선 최종 승패가 법원 판결에 의해결정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거라는 정치적 행위의 결과가 사법적 판단에 의해결정된 것에 대한 비판적 인식도 내포하고 있다.
두 사람 가운데 특히 엡스 교수는 "2000년 대선 때도 비록 우둔하고 저질스럽고혼란스러운 과정을 거치고 시간이 더 오래 걸렸을지라도, 헌법이나 법전에 따라 사법부의 도움없이도 당선자를 낼 수 있었고, 실제 그런 정치적 행위가 진행중이었다"며 정치적 사안이 정치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사법적 판단으로 결정된 데 따른 장기적인 부작용을 우려했다.
그는 주지사와 의회 및 연방 의회가 당선자를 결정할 수 있는 절차를 시나리오별로 상세히 소개하면서 "법적인 문제가 아닌 정치적인 문제인 대통령 선출 분쟁을국민에 의해 뽑힌 이들 선출직에 맡기지 않고 국민에게 책임지지 않는 법관들이 결정함으로써 부시 대통령의 정통성이 계속 문제되는 결과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2002년 중간선거에서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이 대승을 거둔 점을 지적,"2000년 대선 때 의회가 당선자를 결정토록 했더라면, 부시 대통령은 중간 선거 승리로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나 그렇지 않았기때문에 선거 승리에도 불구하고 힘은 더 세졌지만 정통성이 더 커진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백만명의 국민, 최소한 수백만의 민주당원들은 여전히 부시 대통령이사법 쿠데타로 대통령직을 차지했다고 믿고 있다"고 엡스 교수는 지적하고 "4년전대법원은 당시의 일시적인 위기는 해결했는지는 모르지만, 대통령 선택을 유권자에게 책임지지 않고 책임져서도 안되는 곳에 맡긴 것은 장기적으론 더욱 심각한 위기의 씨앗을 뿌렸다"고 우려했다.
그는 그 단적인 예로 "차기 대통령이 대법관을 최대 4명까지 새로 지명할 가능성이 있는데, 대선 때마다 대법원의 판결에 의존하게 되면, 의회의 대법관 지명자인준 과정은 매번 '피바다'가 되고" 결국 사법부의 정통성과 독립성이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워싱턴=연합뉴스) 윤동영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