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4월7일] 성냥

1827년 4월7일. 50만년 묵은 숙원이 풀렸다. 영국인 약제사 존 워커(John Walker)가 성냥을 발명한 것이다. 인간은 불을 처음 사용했다는 베이징원인 이후 50만년 만에 불씨의 보관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발명의 단초는 실수. 착각으로 섞어놓은 연소산칼륨과 황화안티몬이 불을 일으키자 워커는 연구를 거듭, 혼합물을 바른 천조각을 나무막대 위에 감아서 말린 후 유리조각이 박힌 종이에 마찰시켜 불을 얻어냈다. 매치(Match)라는 성냥의 이름도 성냥개비와 마찰종이간 결합이라는 뜻에서 나왔다. 워커는 연구에 방해가 된다며 특허 등록도, 기술 공개도 하지 않았지만 성냥기술은 급격히 발전, 1848년에는 오늘날과 똑같은 성냥이 독일인 뵈트거에 의해 선보였다. 정작 성냥으로 돈을 거머쥔 사람은 20세기 초반 세계 최고의 거부였던 스웨덴의 ‘성냥왕’ 이바르 크루거. 세계시장의 80%를 독점하며 부를 쌓았다. 스웨덴은 지금도 성냥 및 제조장비의 최대 수출국이다. 우리나라에 성냥이 전해진 것은 개화기 무렵. 인천에서 시작됐다. 제정 러시아가 남긴 조선보고서에도 나온다는 인천의 성냥산업은 수학여행과 견학코스로 각광받을 만큼 명물로 자리잡았다. 성냥공장 여직공들이 펼친 1926년 4월의 임금인하 반대 파업은 여성 노동운동사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를 멋모르고 따라 불렀던 군복무 시절의 기억이 머쓱하다. 한국의 성냥산업은 이제 꺼지기 직전이다. 공장이래야 단 두 곳. 종업원을 합쳐도 30여명이 채 안된다. 라이터에 밀렸기 때문이다. 인천의 옛 성냥공장 단지도 2009년에는 미니신도시로 변한다. 산업화의 불씨를 피어냈던 성냥산업의 흥망성쇠가 꼭 성냥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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