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각 정당들은 17대 총선기간 중 앞다퉈 각종 공약들을 쏟아냈다. 이제 선거가 끝난 만큼 각 당이 내놓은 공약을 다시금 곱씹어보며 실현 여부를따져볼 일이다.
전문가들은 선거과정에서 외쳤던 무수한 경제ㆍ민생 관련 공약 가운데 현실성 있는 것들을 여야 합의를 통해 추려낸 뒤 17대 국회에서 입법과정을통해 단계적으로 구체화시켜야 된다고 강조했다.
17대 공약을 살펴보면 경제가 어려운 만큼 여야 가릴 것 없이 모두 민생 관련 현안 해결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각 당이 내놓은 공약의 상당수는 재정마련 방안은 물론 재정지출 규모조차 감안하지 않은 급조한 인상이 짙 었다.
여야 모두 차별성을 찾기 힘든 ‘백화점식 나열’에 급급했으며 정부가 이 미 추진 중인 경제정책을 공약으로 내놓은 ‘재탕’이나 ‘삼탕’식 공약도 많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각 당들이 내놓은 공약을 합하면 올해 재정지출 규모만 10조원을 훨씬 웃돌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했다.
◇경제 분야=각 당들은 출자총액제한제나 노동정책ㆍ규제완화 등 민감한 이슈에서는 입장이 엇갈렸다.
한나라당은 보수적 색채가 뚜렷한 반면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었다.
열린우리당은 여당인 탓인지 이념적 방향성에 얽매이기보다는 현실적 기조 가 강했다. 신용불량자 대책을 놓고 한나라당은 국민기금 모금을 통한 신용불량자 구제책을 내놓았다.
또 16대 국회에서 처리를 못한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법 개정안, 중소기 업인력지원특별법 개정안, 조세특별제한법 개정안 등 ‘신용불량자 문제 해결을 위한 개정 3법안’을 17대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여권이추진 중인 배드뱅크제에 대해서는 “공적자금만 쏟아붓는 선심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우리당은 “국민기금은 세금을 걷어 해결하겠다는 반(反)시장적 방안 ”이라고 맞받아쳤다. 민주당은 신용불량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채무자ㆍ채권자와의 협의를 통해 최대 20회에 걸쳐 채무를 상환하도록 하는 ‘리 볼빙 어카운트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나라당은 오는 2008년까지 5년간 1조8,000억원의 추가예산을 투입, 55만7,000개의 일자리와 직업훈련기회 창출을 골자로 한 ‘청년실업 해소 5개년 계획’을 내놓았다. 민주당은 청년실업해소를 위해 경찰인력과 소방인력을 1만명씩 증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열린우리당은 고학력자 실업률 완화를 위한 일자리 창출과 중소ㆍ벤처기업 에 대한 지원제도 등을 제시하면서 17대 국회 개원 이후 범정치권이 참여하는 ‘일자리 창출 특별위원회’ 설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출자총액제한제는 한나라당이 반대하는 가운데 민주당과 우리당은 현행제도 유지 입장을 보였다. 법인세 인하에 대해서는 민노당을 제외한 모든 당 이 찬성하는 가운데 우리당은 시행시기를 유보했다.
성장과 분배 문제에 대해 각 당은 성장과 분배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원칙론에는 모두 일치된 의견을 내고 있지만 현 시점에서는 한나라당 민주 당ㆍ자민련 등은 성장을 통한 소득향상에,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은 약자를 배려하는 분배에 우선순위를 뒀다.
노사문제에서는 차이가 컸다. 한나라당은 “노동시장이 더 유연해져야 한다”며 임금피크제 도입을 내세웠다. 민주당은 외국인노동자의 노동3권 보 장에 찬성하는 입장이며 우리당은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약속했다.
농업대책은 소득직불제 확대를 통한 농가소득 보전이 공통된 공약. 한나라 당이 농지거래 활성화를, 민주당은 농업예산 10%대로의 증액을, 우리당은농어민 기초생활 및 학비 보장을 내세웠다. 민노당은 쌀 개방 반대와 농가 부채 탕감을 주장했다.
부동산정책을 놓고 각 당은 집값 안정과 부동산이 더이상 투기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는 원칙에는 일치된 의견을 보이고 있지만 실질적 문제에 부딪 치면 ‘시장 경제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과 부동산 보유자를 경외시하는 의견까지 극명하게 엇갈렸다.
부동산 관련 세제에 대해 민주노동당이 부유세와 부동산 공개념을 도입해가장 진보적이며 열린우리당도 부동산 공개념을 제기하는 등 분배정의 차원에서 부동산정책에 접근하는 등 진보적인 의견을 상당 부분 반영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부동산 보유세 강화 방안에 동조하고 있으나 가진 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사회ㆍ교육 분야=이번 선거기간 중 가장 큰 이슈였던 ‘노풍’의 여파로 각 당들이 경쟁적으로 노인복지 분야 공약을 제시했다. 그러나 무조건 “해주겠다” 식의 공약이 많았다. 한나라당은 노부모 부양에 대해 인센티브 를 제공하고 부양을 회피할 때는 강제조치를 취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효도법’ 제정 공약을 내걸었다.
우리당은 고령화사회대책기본법을 제정하고 65~69세 노인 15만명에 대해 추가로 경로연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법으로 효도를 강제하는 것이나재원마련 없이 연금을 증액하겠다는 정책이나 비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라는 평가를 받았다.
민주당 공약에서는 ‘국립노인전문병원 16개 시도 설립’이 눈에 띈다. 고 교평준화 문제에 있어서 민주노동당ㆍ열린우리당ㆍ민주당 순으로 평준화 유지 쪽에 무게를 두고 있고 한나라당은 점진적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 한나라당은 자립형 사립고의 대폭 확대, 대학입시에서 대학의 자율 대폭 허용 등을 평준화 보완책으로 제시했다.
민주당은 공교육 강화를 위해 교사를 6만명 증원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우리당은 ‘교육혁신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했다. 민노당은 영아보육에서 고교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서울대를 해체하는 방식으로교육문제를 풀겠다고 밝혔다.
사회보장제도의 핵심인 국민연금에서도 각 당의 정책은 차별화된다. 한나라당은 주부ㆍ노인ㆍ장애인ㆍ저소득층까지 연금혜택을 확대하는 ‘1인1연금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반면 우리당은 현 연금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가입을 독려하고 저소득층에 대한 국가보조를 확충하겠다고 약속했다.
여성정책에서는 한나라당이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에 직장보육시설 설치 의무화 등을 내걸었고 민주당은 여성고용할당제 순차적 도입을 제시했다. 우리당에서는 산전후휴가 급여 90일분 전액을 사회에서 부담하겠다는공약을 내걸었으며 민노당은 유급 출산휴가 100일 확대를 약속했다.
◇안보ㆍ대북 분야=민주당과 우리당은 ‘안보상 우려에 대한 보완조치’를 전제로 주한미군 후방배치에 찬성했다. 통일 후 미군 주둔에 대해서는 한ㆍ민ㆍ우 3당이 평화유지군 형태로 계속 주둔해야 한다는 데 공감한 반면민노당은 2012년까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한미동맹 강화를 전제로 동북아 지역 분쟁 해결을 위한 주변국과의 평화협력기구 창설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민주당은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반도 주변국과의 외교 다변화를 강조했고 열린우리당은 미래 지향적인 한미협력 관계와 함께 한반도 주변 역학관계의 변화에 대한 신축적인 대응을 중요시했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와 군축, 미국 일변도의 외교정 책 탈피,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전면개정 등을내세워 3당과의 차별성을 드러냈다. 특히 대북 화해협력을 강조하는 민주당ㆍ열린우리당과 달리 상호주의에 입각한 대북정책을 주장해왔던 한나라당의 태도가 상당히 유연해졌다.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는 민주노동당이 파병철회, 민주당이 전면 재검토를 요구해 “예정대로 파병이 추진돼야 한다”는 한나라당ㆍ열린우리당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이밖에 각 당마다 경쟁적으로 현역 사병 복무기한을 축소하겠다는 공약을내세웠다. 우리당은 사병 복무기간을 연내에 22개월로, 민주당은 단계적으 로 18개월까지 단축한다는 안을 냈고 민노당은 예비군 폐지와 복무기간을18개월로 단축하겠다고 약속했다.
전력공백을 메우기 위한 대안은 없다. 그나마 한나라당은 군 전력을 감안해 단축을 검토한다고 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제시한 ‘사병봉급 20만원 선으로 인상’ ‘예비군 훈련 보상 금액 1,000% 인상’ 안은 재원조달 방안이 뚜렷하지 않다는 눈총을 받았다.
◇정치 분야=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대통령 권력 방지 등에 관한 부정부패 척결 문제에 집중한 반면 열린우리당은 정치자금 투명화 등에 더 관심을 보였다.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은 국회 또는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통제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주요 3당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및 불체포특권을제한하겠다고 공약해 눈길을 끌었다. 과거로부터 결별하기 위한 노력도 엿 보였다.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이 분야 공약을 가장 많 이 내걸었으며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설치하는 동시에 특검제 상설화를 약속했다.
또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불법 정치자금 국고환수특별법 제정을 약속했다 . 특히 민주당은 소속 국회의원에 대한 외부감사기관의 회계감사, 비리정치인에 대한 사면복권을 제한하는 입법추진 등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김민열기자 my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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