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은 한정돼 있는데 살아야 할 사람들은 한없이 늘어간다. 도시가 빽빽해지는 이유다. 좁은 땅에서 더 넓은 공간을 모색하다 보니 건물은 위로만, 위로만 치솟는다. 고층 아파트와 마천루가 그 결과물들이다.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이 안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이내 규격화ㆍ획일화 된 도시에 식상해졌다.
좁은 땅에 많이 짓는 수직적 형태는 유지하되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건축물을 지을 수는없을까? 이 질문의 해답으로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그룹인 MVRDV는 '버티컬 빌리지(The Vertical Villageㆍ수직적 마을)'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각자의 집들을 그 모양 그대로 살려 위로 쌓아 올리는 것이다.
어떤 형태인지 상상이 잘 안 된다면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그 모형을 만나볼 수 있다. 지난해 말 대만에서 시작된 MVRDV의 아시아 순회전이 '더 버티컬 빌리지'라는 제목으로 10월7일까지는 토탈미술관에서 열린다.
MVRDV는 유명 건축가인 위니 마스를 중심으로 야콥 판 레이스, 나탈리 드 프리스가 함께 설립한 건축디자인 회사로, 현대 건축과 도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이름은 낯설지만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에서 가장 비싼 주거시설로 꼽히는 '더 클라우드'를 디자인한 이들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워진다. 대표작으로 2000년 하노버 엑스포관이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100세대의 노인들을 위해 지은 '보조코(WoZoZo)아파트'는 13채의 집이 마치 서랍을 빼놓은 것처럼 튀어나와 있어 2010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 10대 불가사의 건축물'로도 소개됐다.
토탈미술관 앞뜰에는 뾰족지붕의 노란 집, 십자 모양의 녹색 집, 구름 형태의 파란 집, 원통형 빨간 집 등이 수북이 쌓여있다. 실제 집 크기의 15분의 1로 제작된 것이라 전체 높이는 4m. 언뜻 어린이의 블록쌓기 장난감을 보는 듯 하지만, 제한된 땅 위에 각 집이 가진 다양성이 오롯이 살아있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9개의 모니터에서 도시들의 진화과정이 펼쳐진다. 서울ㆍ베이징ㆍ자카르타ㆍ타이페이ㆍ홍콩 등 서로 다른 도시지만 딱딱한 고층빌딩이 늘어선 외양이나 고층건물이 전통마을을 잠식해 가는 과정은 흡사하다. 지하 전시장으로 내려가면 '블록어택''어반빌리지(Urban Village)의 삶과 죽음''구글검색' 등 총 10개의 주제로 전시들이 세분화 돼 더 흥미롭다.
또한 MVRDV가 개발한 웹프로그램'하우스메이커''빌리지메이커'를 통해 각자 꿈꾸는 집과 마을을 지어볼 수도 있다. 크기ㆍ개수ㆍ형태ㆍ구조ㆍ색깔 등을 직접 지정해 그 결과를 자신의 SNS에 게재할 수도 있다. 개념적인 전시지만 어렵다고 느껴지기 보다는 놀이터처럼 친근한데, 집에 대한 본성에 충실하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진다. 입장료는 어른 7,000원ㆍ학생 5,000원이다. (02)379-7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