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속수무책의 시대'와 낡은 사고

1인 가구·고령화 등 패러다임 변화… 고정 관념이나 편견 통하지 않아

정부 재건축 연한 등 과거만 뒤적여 대증요법에 시대착오적 규제 양산

급변하는 환경 맞춰 사고 전환해야


'속수무책의 시대'

많은 것들이 빛의 속도로 변하는 현대사회를 비유한 말이라고 한다. 사행시로 풀어보면 이렇다. 속; 속도가 빠르고, 수; 수시로 바뀌고, 무; 무섭게 다가오고, 책; 책에도 답이 없는 시대. 모든 게 빨리 바뀌다 보니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통하지 않는 시기라는 의미다. 손이 묶여 어떤 계책도 세울 수 없다는, 속수무책(束手無策)의 뜻과도 어울리는 듯하다.

요즘 세태를 보면 이 말이 딱 들어맞지 싶다. 1인 가구와 고령화 확산, 정보통신기술(ICT) 진화로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신세계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넓게 보면 저성장·저유가·저금리도 여기에 포함할 수 있겠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도 "고도성장기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변화의 영향은 경제·사회는 물론 일상생활 전반에 미치는 중이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안방에서 클릭 한 번으로 파리백화점에 전시된 명품 핸드백을 사고 소형 주택 수요가 늘고 금융과 모바일의 결합인 핀테크(fintech)가 부상하고…. 경제 패러다임이 확 바뀌고 있다고 할 정도로 폭이 넓고 깊다.


이쯤 되면 삶의 방식뿐 아니라 나라의 정책에 일대 전환이 불가피하다. 무엇보다 사고(思考)가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에 맞는 행동이 나오고 정책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직 거대한 흐름에 올라탈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특히 정부가 그렇다. 세상은 급변하는데 시각은 달라지지 않아 보인다. 과거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추억의 책장만 뒤적이고 있는 모양새다. 시대착오적인 규제가 사라지지 않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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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법원에서 위법 판결이 난 대형마트 영업제한 조치를 보자. 정부는 2012년부터 소비자의 발걸음을 전통시장으로 돌리겠다며 휴일에 대형마트 문을 강제로 닫게 했다. 하지만 전통시장은 지금도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마트는 그렇다 치더라도 전통시장마저 매출이 줄었다고 한다. 대신 온라인 쇼핑몰은 최근 3년 새 외형이 50% 이상 커졌다. 쇼핑방식이 모바일 등 새로운 채널로 급속히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유통시장 경쟁구도가 온라인 대(對) 오프라인으로 이동하고 있는데도 대형마트와 전통시장만 생각하니 헛발질이 나올 수밖에 없다.

부동산 정책도 다르지 않다. 재건축으로 부동산 시장을 띄우려는 발상이 여전하다. 예전에는 서울 강남 재건축을 건드리면 온기가 강북·수도권으로 퍼지면서 시장 전체가 뜨거워졌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저금리와 저성장, 인구구조 변화로 주택시장이 격변기를 맞고 있다. 전세 퇴장, 월세 확대는 그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다. 온갖 아파트 재건축 규제를 완화해도 반짝 효과에 그치는 이유다. 그런데도 정부는 법을 고쳐 5월부터 최장 40년인 재건축 연한을 30년으로 줄이기로 했다. 재건축 연한이 필요하면 늘였다 줄였다 하는 고무줄인가.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판에 근본적인 처방전을 마련하지 않고 철 지난 대증요법에 기대려는 꼴이다.

손봐야 할 것은 세금·석유산업·노동정책 등 수두룩하다. 연말정산 파동을 계기로 세금 문제가 도마에 오른 것은 현행 세제가 시대에 맞지 않은 탓이 크다. 1970년대 구축된 조세체계를 근간으로 매년 땜질 식 세제개편으로 일관한 탓에 누더기가 되고 말았다. 2011년 고유가 시기에 시행된 알뜰주유소, 석유제품 전자상거래제 역시 옛노래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수십년 전에나 통했을 법한 사고의 틀로 현상을 재단하면 현실에 뒤떨어지고 한발 늦은 정책만 남발될 뿐이다. '이전에 재미를 봤으니 이번에도 효험이 있겠지'라는 구태의연한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할 때다. 의식 개혁 없는 국가개조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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