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1월25일] 그린백당


1874년 11월25일 인디애나폴리스. 농부들이 외쳤다. ‘돈을 찍어 가족을 구하자.’ 창당대회였다. 최대 목표는 화폐발행 증가. 당명도 지폐 ‘그린백(Greenback)’에서 따왔다. 농민들은 왜 그린백당을 만들면서까지 통화팽창을 요구했을까. 농산물 가격 하락 때문이다. 남북전쟁 당시 링컨 대통령이 전쟁공채를 갚기 위해 남발한 지폐 그린백이 물가폭등을 야기하자 그랜트 행정부가 통화환수에 나서고 1873년 공황까지 겹쳐 물가가 떨어진 탓이다. 전반적인 불황 속에서도 농부들의 타격이 가장 컸다. 그린백당 창당 무렵 농산물 평균가격은 1864년에 비해 절반 수준을 밑돌았다. 지역은행의 자체 화폐 발행도 규제되기 시작해 희귀해진 돈의 가치는 계속 올라가고 농산물 값은 떨어지기만 하는 상황에서 농민들은 아예 정당을 만들어 목소리를 높였다. 화폐 공급량에 따라 물가수준이 정비례한다는 화폐수량설을 적극적으로 실천한 셈이다. 세를 불린 그린백당은 1876년 대통령선거에 증기기관차 개발자 출신인 거부 피터 쿠퍼(쿠퍼 유니온 대학 설립자)를 후보로 내세워 패배했지만 1878년에는 하원 의석 21개를 얻는 돌풍을 일으켰다. 그린백당은 부침 속에서 창당 10년 만에 새로운 진보정당으로 흡수됐어도 목표였던 보호무역, 여성 참정권 인정 등은 미국 경제정책의 근간으로 자리잡았다. 화폐증발에도 실패했지만 더 이상의 환수를 막는 데는 성공, 그린백 지폐는 2차대전 직후까지 쓰였다. 경제적 이해집단의 정당화는 옛 얘기가 아니다. 이탈리아에서는 1995년 정부가 연금제도 개혁에 나서자 노인층이 ‘연금당(Pansion Party)’을 만들어 연립정권이 무너진 적도 있다. 한국에서도 나올 만한 정당이 많아 보인다. 연금당에 빈민당, 부동산당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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