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빈곤해결 못하는 기초생활보장제] <중> 급여체계 개편 서두르자

'맞춤형 급여' 도입 땐 40만명 추가 혜택

생계·주거·의료·교육 등 기준 세분화로 수급대상 확대

'이행기 급여' 안전장치 둬 기존 수급자 혜택도 그대로


서울에서 부인과 함께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40대 A씨는 오랜 기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신문 배달 같은 아르바이트만 하며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왔다. 올 초 지인 소개로 조그만 회사의 경비 일을 맡은 그는 드디어 월급 130만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A씨가 일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소득이 4인 가족 최저생계비(163만원)에 못 미쳤기 때문에 수급자격은 유지됐고 생계급여와 의료비 지원 혜택을 계속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A씨가 일한 지 석 달이 지나 월급이 165만원으로 오르면서부터였다. 수급 자격을 잃으면서 병원 진료비부터 고등학생 딸아이의 수업료와 교과서값까지 지출이 부쩍 늘어난 것. 월급이 오른 만큼 쓸 돈도 더 많아진 A씨는 차라리 월급이 깎이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2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년 넘게 국회에 발이 묶여있는 정부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이달 중에라도 통과된다면 오는 10월부터는 A씨처럼 임금 인상을 걱정하는 일은 사라진다.


지금은 소득이 최저생계비(중위소득의 40%, 163만원) 이하인 경우 생계와 주거, 의료, 교육, 자활, 해산, 장제 등 7개 급여를 모두 받고 최저생계비를 10원이라도 넘어설 경우 단 한 푼의 혜택도 받지 못한다. 하지만 개정안이 시행되면 생계ㆍ주거ㆍ의료ㆍ교육 급여에 대한 각각의 기준을 만들어 대상자를 선정하기 때문에 A씨처럼 월급이 올라도 주거ㆍ교육 급여는 받을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이 같은 제도 개선으로 급여 지원을 받는 빈곤층이 현재 140만명에서 180만명으로 40만명 가량 늘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개정안에 담긴 각각의 기준을 살펴보면 피복비와 교통비, 식료품비 같은 생활비용을 제공하는 생계급여는 중위소득 30%(121만원) 정도를 기준으로 삼은 뒤 해당 가구의 소득인정액(재산가치를 반영한 소득)을 뺀 금액을 지급하게 설계돼 있다.

의료비 대부분을 국가가 대신 내주는 의료급여의 경우 현재 최저생계비와 같은 중위소득의 40%(163만원) 이하 가구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주거급여 기준은 중위소득의 43%(174만원)로 앞으로 재정상황에 따라 수급 대상을 넓혀갈 계획이다. 서울과 경기, 광역시, 지방 등 거주 지역과 가구원 수에 따라 책정한 월 임대료를 개인 소득을 고려해 제공한다. 또 수급자 본인 소유의 집이 있을 땐 최소한의 주거 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집수리 지원이 추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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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입학금과 수업료, 교재비, 학용품비, 교과서 비용을 지원하는 교육급여는 중위소득의 50%(202만원)로 설정했다.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중위소득의 30%(생계), 40%(의료), 43%(주거), 50%(교육)로 세분돼 최저생계비가 넘는 소득이 있더라도 주거나 교육 급여를 받을 길이 열리는 것이다.

개선안에 따라 현재 수급대상자 가운데 지방거주자를 중심으로 일부는 주거급여가 줄어들 수 있다. 정부는 제도가 바뀌더라도 최소한 이전 수준의 급여는 받도록 차액을 보장하는 '이행기 급여'를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급여제도를 개편하면서 주거급여는 국토교통부, 교육급여는 교육부 등으로 책임을 나눠 가지게 했다. 이를 통해 주거급여의 경우 국토부의 다른 주택복지 정책과 함께 운용되면서 정책 효율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됐다. 정부는 또 최저생계비라는 개념 대신 최저보장수준(중위소득의 일정 수준)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최저생계비가 법률로 정해지지 않는 데 대한 우려와 각 부처 장관의 선택에 따라 기초생활 보장제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아시아사회정책연구센터장은 "제도 개선으로 연간 1조원의 예산이 더 투입돼 복지수준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복지 정책은 사회적 합 의과정이 필요하므로 장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고 밝혔다.

◇중위소득=전체 가구를 소득순으로 순위를 매겼을 때 한가운데 속하는 가구의 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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