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국회서 발목 잡힌 '플리바기닝'

정치권 "검찰 막강한 권한 우려" 상정조차 안해<br>검찰 "부정부패 수사할 수 있게 특검제라도 둬야"

최근 익명의 고발장이 검찰에 접수됐다. '지난 2008년 18대 총선 직전 현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 A씨가 비례대표 상위순번을 받기 위해 실세 의원에게 12억원의 공천헌금을 제공했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은 공안1부에 이 사건을 배당했지만 검찰사건사무규칙에 따라 수사에 착수하지 않겠다는 각하 결정을 내렸다. 고발인의 소재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 관련 진술을 추가로 듣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의원은 정권 말기 선거철을 앞두고 '공천헌금 20억원' 의혹에 휩싸였다. 그러나 검찰은 쉽게 이 의원을 부르지 못하고 있다. 의혹이 사실인지 아니면 루머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계좌추적과 같은 객관적 증거가 우선돼야 한다. 작정하고 은밀하게 진행된 일이라면 돈을 건넨 사람의 진술이 없을 경우 기소조차 어렵기 때문에 검찰은 누군가의 '입'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하지만 법무부가 효과적인 수사를 위해 도입에 착수했던 이른바 플리바기닝(Plea Bargainingㆍ유죄협상제도)은 지금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6일 법무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범죄 가담자가 수사에 협조할 경우 기소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형을 감면해주는 내용의 '형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지난해 7월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국회에 제출됐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되지 않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법안에 반대하고 있고 새누리당도 처리에 소극적이어서 사실상 18대 국회에서는 통과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검찰은 진술이 없으면 내밀한 수사가 어려운 뇌물 수수ㆍ알선수재 등의 원활한 조사를 위해 법안 처리를 강력히 원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은밀하게 진행되는 기업들의 담합을 깨기 위해 고육책으로 도입한 리니언시 제도처럼 내부고발자(Whistleblower)의 입을 열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정치권 관련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면서도 "핵심관련자들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경우 입을 열 수단이 없다는 점이 수사의 발목을 잡는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정치권에서 해당 법안을 처리하지 않는 이유가 검찰에 대한 신뢰도에 있다면 객관성이 보장되는 특별검사제도에라도 관련 규정을 둬 고위 정치인과 정부관료의 부패를 성역 없이 다룰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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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치권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른바 플리바기닝을 우리 법 체계 안에 흡수할 경우 검찰이 권력을 제한 없이 휘두를 수 있다는 게 이유다.

박준선 새누리당 의원은 플리바기닝 도입에 대해 "형사소송상 중요한 문제기 때문에 수사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며 선을 그었다. 박 의원은 "당장 법무부가 제시한 방안으로 간다면 검찰 권한이 너무 커지는 헌법적인 문제가 있다"며 통과가 어렵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이춘석 민주통합당 의원도 강력한 반발 의사를 내비쳤다. "무소불위의 우리 검찰은 (플리바기닝을 도입한다면) 지금보다 막강한 권한을 휘두를 것"이라고 운을 뗀 이 의원은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할 검찰에게 협상 권한을 주면 유력한 사람을 수사할 때 솜방망이로 처벌하는 등 제도를 악용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속내는 다른 곳에 있다는 의견도 있다. 플리바기닝이 정치인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치권을 둘러싼 여러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인데 정치인들은 이 법안이 만의 하나라도 부메랑이 돼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법안 처리에 나서지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

서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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