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원·엔 환율 내년중 900원대로 하락"…韓경제 악영향

10개 투자은행 환율 전망…외환당국 “원·엔 움직임 주시”

 내년 중 엔화에 대한 원화의 환율(원·엔 재정환율)이 평균 ‘세자릿수’에 머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원·엔 환율이 떨어질수록 일본과 직접 경쟁을 하는 한국 산업의 경쟁력은 낮아진다. 수출시장에서 한국의 상품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지기 때문이다.


 이는 고스란히 내년 한국 경제의 회복세를 발목 잡게 된다. 당국도 원·엔 환율의 움직임에 불확실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경계 강도를 한층 높였다.

 ◇ “원·엔 환율 900원대 고착화 가능성”

 1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11월 중순 이후 원화와 엔화 값을 전망한 10개 투자은행(IB)의 원·엔 환율 예측치는 내년 3분기 평균 100엔당 996.0원까지 하락했다.

 이는 분기 평균값으로, 900원대의 엔화 환율이 일상화되는 시점을 의미한다. 실제로 1,000원 선이 깨지는 것은 이보다 훨씬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원·엔 환율이 1,000원 선 아래에서 움직인 것은 2008년 9월9일(100엔당 996.7원)이 마지막이다.

 IB들의 올해 4분기 원·엔 환율 전망치는 1,054.1원이다. 지난달 마지막 거래일(29일·1,030원대)보다 다소 높지만, 연초 1,230원대보단 대폭 낮다.

 전망치는 내년 1분기 1,031.6원으로 내려오더니 2분기에는 1,012.5원으로 수위를 낮췄다. 이어 3분기 결국 세자릿수대로 진입했다.

 전망기관들이 원·엔 환율이 크게 떨어진다고 본 것은 일본이 ‘아베노믹스’에 본격적으로 채찍질을 시작하며 엔화 약세가 더 심해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지난달 일본이 추가적인 양적완화를 시사하며 엔·달러는 달러 당 100엔 위로 복귀했다. 일부 IB는 이 추세로 엔화가 내년 3분기 118달러까지 간다고 보고 있다.

 반면에 원화는 10월 역대 최대 경상흑자(95억달러)를 거두며 강세 압력을 받고 있다. 현재 달러당 1,050원 선인 원ㆍ달러 환율이 내년에는 1,020원까지 내린다는 전망까지 있다.

 기관별로는 크레디트스위스가 원·엔 환율이 내년 1분기 중 평균 950.9원에 도달할 것으로 봤다. 전망기관 중 가장 빠른 하락속도다.

 씨티그룹도 내년 2분기에 100엔당 평균 995.2원으로, 모건스탠리 등도 내년 3분기엔 평균 900원대로 진입한다고 점쳤다.

 

 ◇ 원·엔 환율 하락 시 국내 경제회복도 주춤

 원·달러 환율이 내려가고, 엔·달러 환율이 올라가면서 원화강세·엔화약세 상황이 계속되면 회복세를 탄 한국경제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연평균 엔·달러 환율이 달러 당 110엔,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이 됐을 때 제조업의 이익이 26조원 증발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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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경제연구소는 엔·달러 환율이 100엔,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이 됐을 때 수출 증가율은 2.0%포인트 줄어들고 경제성장률이 1.8%포인트 하락한다고 추정했다.

 특히 일본과 경합도가 높은 기계산업의 수출이 7.5%, 자동차가 6.4%씩 줄고 영업이익이 적자로 전환하는 수출기업도 현재의 33.6%에서 68.8%로 늘어난다고 봤다.

 이런 상황이 현실화된다면 기업부문의 수익성이 악화되며 일부 취약 업종은 구조조정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환차익을 노린 외국계 자금이 급격하게 유출입되며 주식·채권 등 금융시장이나 이에 연계된 실물경제에 혼란을 초래할 확률도 제기된다.

 결국 내년 한국은행이 3.8%, 정부가 3.9%로 예상하는 한국의 경제성장률도 자칫 2%대로 반 토막이 날 가능성마저 있다.

 특히 산업계에는 위기감이 퍼졌다. 일본과 경쟁이 심한 자동차 부문 등에선 엔화가치의 하락에 따른 부정적 전망이 이미 주가에 영향을 미친 상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최근 임원들에게 “엔저에 따른 시장동향을 주시하고 대책을 마련하라”는 내용의 내부 메시지를 보낼 정도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대(對) 일본 제품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의 부진이 결국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 외환당국 “원·엔 환율 예의주시” 

 원·엔 환율의 하락속도는 앞으로 더 가팔라질 확률이 크다. 일본의 집권세력이 엔저 현상을 무기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아베 총리의 측근(하기우다 고이치 중의원)이 “원화를 사들여 환율을 상승시켜 한국의 수출경쟁력을 망가뜨리자”는 ‘경제정한론(征韓論)’까지 주장했다.

 임 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는 경제적 우경화를 통해 정치적인 이득을 얻으려는 의도”라며 “실제로 효과가 있을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외환시장에선 당국이 원·엔 환율 하락을 막고자 원·달러 시장에 개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달러를 사들여 현재의 엔저·원고 흐름을 엔저·원저로 바꾼단 얘기다.

 반면에 ‘환율 조작’이란 누명 때문에 외환개입은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엔 성 김 주한 미국대사까지 나서 한국에 개입을 자제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다.

 외환당국은 신중한 입장이다. 1년 전 아베노믹스 출범 이후 시작된 엔저 현상의 영향이 국내 산업에 아직 가시화하고 있지 않다는 판단하고 있어서다.

 이는 일본과의 산업경합도가 과거보다 낮아진데다 한국 상품의 비(非)가격경쟁력도 높아진 덕분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당국 고위 관계자는 그러나 “환율이 가격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는 데는 시차가 있다”며 “원·엔 환율의 추세적인 움직임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계속해 예의주시할 것”이라 말했다.

/디지털미디어부


안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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