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자체 통계로 추정하면 설비투자도 살아나고 있다.’ 박승 한은 총재가 지난 10일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친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경기전망의 중요한 지표로 인용되는 설비투자 통계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박 총재는 “수출ㆍ생산ㆍ소비가 모두 좋은 가운데 설비투자와 건설 부문이 다소 불확실하다”며 “그러나 설비투자의 경우 한은의 자체 통계로 추정하면 견실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한은과 통계청의 설비투자 발표치가 큰 차이를 보여 경제주체들의 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달 2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한은은 3ㆍ4분기 국내총생산(GDP) 계정상의 설비투자 규모가 총 18조7,30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 증가해 올들어 가장 호조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사흘 뒤 통계청이 밝힌 설비투자 추계는 같은 기간 증가율이 0.5%에 그쳐 한은 통계와 무려 3.7%포인트나 차이를 보였다. 더욱이 통계청은 8월과 9월에는 설비투자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각각 0.7%와 2.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혀 최근 기업의 설비투자가 주춤하고 있다는 해석을 낳게 했다. 이처럼 두 기관의 설비투자 수치가 엇갈리는 것은 통계의 포괄범위와 산정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한은 설비투자가 산업연관표의 73개 부문을 포괄하는 반면 통계청은 선박ㆍ낙농ㆍ화훼작물 등이 제외된 63개 부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대에 1,000억원대를 호가하는 선박이 빠지기 때문에 수치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 또 가격기준도 한은이 구매자가격을 잣대로 삼는 반면 통계청은 생산자가격을 사용하고 있다. 구매자가격에는 도ㆍ소매와 운수마진, 등록세나 취득세, 중개수수료 등이 붙어 선박 하나만으로도 3~4%포인트의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통계청은 이번에 발생한 두 기관간 지표 격차가 구체적으로 어떤 항목에서 생겼는지 파악한 뒤 고쳐나가겠다는 입장이다. 통계청의 한 관계자는 “한은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분기별로 발표하는 반면 통계청은 신속성을 위해 매월 급하게 만들어 차이가 날 수 있다”며 “이번에는 그 격차가 다소 크게 나와 앞으로 차이 발생요인을 최소화해 통일성을 제고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박사는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어려움 가운데 하나가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의 차이로 이는 결국 통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통계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