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프로가 되자

박봉규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외환위기로 온 국민이 실의에 빠져 있던 지난 98년, US여자오픈 연장 결승전이 기억에 새롭다. 미국 여자프로골프대회 중에서도 권위를 자랑하는 이 대회에서 박세리는 우승을 따냈다. 어둡던 시기에 날라온 승전보는 국민을 감격시켰다. 우승보다 더한 감동을 받았던 대목이 하나 있다. 연장 마지막 홀에서 박세리는 절대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그린을 겨냥한 샷이 페어웨이를 벗어나 연못 둔덕에 걸려버린 것. 물속에서 공을 쳐내기 위해 신발과 양말을 벗었을 때 하얗디 하얀 발목과 발이 나왔다. 검게 탄 다리와 하얀 발의 대비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연습에 전념했는지를 웅변하는 것이었다.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 강수진의 아름다운 몸짓을 지탱하는 발가락도 마찬가지다. 발레슈즈 속에 숨어 있는 뚱뚱하고 보기에도 흉측한 그녀의 발가락은 온몸의 체중을 받으며 버텨온 고난의 시간을 보여준다. 박세리의 발목과 강수연의 발가락은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프로 정신의 상징이다. 좋든 싫든 세계는 점차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체제로 바뀌고 있다.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게 변해간다. 세계화다, 개방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의 수용이다 하는 단어들은 이런 추세를 말해주는 것이다. 최고를 요구하는 것은 스포츠나 예술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분야에서 프로를 요구한다. 지나간 세대만 해도 일반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대충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통할 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상황의 변화를 남들보다 먼저 알아차릴 수 있는 혜안(慧眼), 현재의 여건에 대한 정확한 판단능력, 오늘의 여건을 바탕으로 내일을 대비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추진력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다. 이 모든 것들은 아마추어의 영역이 아니다. 남들과 확실히 차별화된 프로정신이 없이는 변화를 선도하기는 커녕 흐름을 따라가기도 벅차다. 문제는 프로가 생각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박세리가 벤치에 느긋하게 앉아 ‘골프 스윙 잘하는 법’에 관한 책만 읽고 있었거나 강수연이 발레 잘하는 법에 대한 비디오만 보고 있었다면 세계 제일이 될 수 없었음이 자명하다. 연구실이나 산업현장도 마찬가지이다. 몸으로 뛰는, 뼈를 깎는 노력이 없이는 안되는 일이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도 결국은 자기 분야에서 프로정신으로 무장된 진정한 전문가를 찾아내고 길러내는 일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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