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올해 프리미엄 스마트폰 '갤럭시S6'는 출시 달인 지난 4월 한 달간 전 세계 주요 시장에서 판매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홍콩의 조사기관인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갤럭시S6는 미국에서 2위를 차지했고 중국·인도·브라질·인도네시아 등 최대 시장에서는 현지 업체 등에마저 밀려 5위 밖으로 위치했다. 삼성전자가 전체 스마트폰 점유율 1위인 점을 감안하면 중저가 기종의 판매량이 과도하게 많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조사기관 IHS의 케빈 왕 이사는 "중국의 경우 현지 업체가 삼성보다 저렴하면서도 동급 성능을 갖춘 제품을 내놓고 있다"며 "삼성의 프리미엄 제품 경쟁력이 약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2·4분기에 결국 영업이익 7조원 벽을 깨지 못한 근본 원인을 설명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삼성이 험난한 세월 속에서 구축해온 '프리미엄 이미지'에서 찾는다. 제품의 성능이 우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품질만으로는 '충성 고객'을 유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삼성이 애플이 세기의 대결을 펼쳤던 2~3년 전만 해도 삼성은 압도적인 성능으로 '명품' 이미지를 정립하며 잠재 고객들의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중국 등에서 삼성의 갤럭시 휴대폰은 '가장 갖고 싶은 품목'으로 인식될 만큼 명품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스마트폰 관련 기술 발전이 한계에 이르고 애플이 대화면 스마트폰을 내놓는 등 변신을 시도하자 삼성의 이런 이미지가 희석됐고 이는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결국 삼성전자가 다시 한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삼성만의 '브랜드 정체성(Identity)'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삼성 제품=명품·자랑"이라는 인식을 글로벌 소비자들에게 다시 각인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삼성이 대역전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제품 개발과 생산·마케팅 전 분야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노력을 치열하게 펼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추격자 이미지 버려라=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하락하고 있다. 영국 업체 밀워드브라운에 따르면 올해 삼성전자 세계 브랜드 가치 순위는 45위로 전년(29위) 대비 16계단이나 곤두박질쳤다. 밀워드브라운 브랜드 평가는 전 세계 기업들의 광고단가를 매기는 기준이기도 하다. 2013년 228조원까지 올랐던 삼성전자의 연 매출은 지난해 206조원으로 다시 가라앉았다.
전문가들은 '재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방식으로 일본 가전업체들을 누르고 애플을 바짝 뒤쫓았던 삼성전자가 진정으로 한계에 봉착했다고 평가한다. 효율적 생산관리와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커왔던 삼성전자의 전략에 흠결이 생겼다는 진단이다. 이승우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스마트폰 시장 초기에는 삼성의 재빠른 추격자 전략이 통했지만 중국·인도 업체들이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치고 올라오며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다"면서 "정보기술(IT) 업계는 하드웨어 기술장벽이 점점 낮아지는 추세여서 삼성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브랜드 정체성 재정립해야=삼성전자가 이 같은 성장정체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세상에 없던 제품'으로 시장을 창출하고 장악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2007년 아이폰 출시로 IT산업의 지도를 바꿔놓은 애플이 좋은 예다.
관련 업계는 IT산업의 초점이 개별 기기에서 다수의 기기를 포괄한 '플랫폼'으로 옮겨가는 만큼 애플과 같은 브랜드파워가 더욱 절실하다고 본다. 플랫폼 경제에서 소비자의 선택은 기기의 성능보다 브랜드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삼성웨이'의 저자이기도 한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 교수는 "시장이 예상하는 고만고만한 혁신으로는 애플과 같은 브랜드 위상을 정립하기 힘들다"며 "기업문화 등 어떤 것을 바꿔서라도 예상외의 무언가를 내놓아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핵심은 인재…창의·융복합형 인재 확보 절실=삼성전자 내외부에서는 하드웨어 성능을 강조하던 기존 방식을 탈피해 소프트웨어(SW)·소비자경험(UX)에 초점을 맞춘 신제품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곧 창의적·융복합형 사고가 가능한 고급 기술인재의 확보와 함께 재빠른 추격자 시절에 만들어진 관료주의적 기업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한 고위관계자는 "여러 난제를 극복하기 위한 창의적 인재는 갈수록 절실하다"며 "이들을 확보·육성하며 조직에 융화시킬 방안을 찾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운용되는 삼성 싱크탱크팀(TTT)처럼 삼성전자의 변화 조짐도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최연소 삼성 임원(오너일가 제외) 기록을 세운 프라나브 미스트리(34세) 상무가 이끄는 TTT는 가상현실 기기 등 삼성전자의 새 먹거리 발굴과 관련해 괄목할 성과를 내고 있다. 이 교수는 "가전·스마트폰처럼 삼성이 장기를 가진 사업부는 추격자 전략을 유지하되 가상현실 같은 신사업부는 창의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문화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며 "다양한 기업문화가 공존하는 '양손잡이' 전략이 변화가 몰고올 충격을 최소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