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바다 밖이 살 길이다


원격진료 논란이 다시 뜨겁다. 정부가 지난달 29일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부터다. 이튿날인 30일 노환규 의사협회 회장은 이영찬 보건복지부 차관(장관 직무대행)을 만나 돌직구를 날렸다. 그는 "철회하지 않으면 대정부투쟁을 하겠다"고 일갈했다.

현 정부 들어 원격진료가 이슈가 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약 반년 전인 5월1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관한 첫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원격진료 문제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장준근 나노엔텍 대표는 "저희 회사는 원격진료가 가능한 소형 의료진단기기를 개발했으나 국내에서는 판매할 수 없고 미국이나 유럽에 전량 수출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장 대표는 "현재 의료법은 의사나 환자, 혹은 의사나 간호사 간 원격진료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장 대표의 발언이 대서특필되면서 원격진료 허용 여부는 '창조경제 성패의 바로미터'가 됐다. 창조경제를 표방한 현 정부에서 장 대표의 문제 제기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중요한 요소를 담고 있다. 융복합 기술로 새로운 산업(창조경제)의 문을 열려고 하는데 법이 미비해 싹을 틔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국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미 의사협회 등의 반대로 번번이 국회 법안 상정과 자동 폐기의 무의미한 쳇바퀴를 밟은 뒤끝이다.

최근 사석에서 나노엔텍의 장 대표를 만났다. 그 역시 원격진료 의료법 개정안 전망에 대해 낙관보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아울러 불합리한 여러 규제를 거론하며 많은 아쉬움을 피력했다.

규제, 척박한 기업환경… 희망 없어


장 대표는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 교수직을 버리고 벤처기업가가 된 도전적인 인물이다. 그가 창업한 나노엔텍은 2009년 세계적인 다국적 바이오기업인 '라이프 테크놀로지스'사에 생명공학 장비 특허를 팔아 한방에 2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0년에는 SK텔레콤으로부터 250억원의 투자를 받았고, 지난 6월 현장의료진단 관련 FREND 카트리지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따냈다. 현재 나노엔텍이 보유한 생명공학 분야 특허 건수는 120개를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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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의 장 대표 건의에서 알 수 있듯 나노엔텍의 내수 비중은 10%도 안 된다. 의료법 등 한국의 각종 규제에 대해 장 대표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줄곧 한가지 생각에 골몰하게 됐다. "만약 나노엔텍이 내수시장에 손쉽게 진입해 돈을 많이 벌었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이다.

물론 나노엔텍은 현대차처럼 내수시장을 발판 삼아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을 것이다.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춘 기업인 만큼 그렇게 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여전히 리베이트가 횡행하는 불투명한 한국의 의료업계 구조 속에서 손쉽게 돈 버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됐을 수도 있다.

쓸데없어 보이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 건 나노엔텍이 글로벌 사업의 기반을 탄탄히 닦은 이면에는 한국의 척박한 기업환경이 득으로 작용한 게 아니냐는 궁금증이 생겨서다. 그저 밥그릇만 지키려는 의사집단과 표(票)퓰리즘에 빠져 있는 국회, 그리고 몸 사리기 바쁜 관료들이 십수년간 원격진료의 법적 근거를 만들지 못한 덕에 나노엔텍이 목숨 걸고 해외를 개척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다시 장 대표를 만나면 이런 우문을 던져볼 요량이다.

장 대표를 본지 며칠 안돼 20년 가까이 소비재를 만들어온 A사장을 오랜 만에 만났다. 그는 "B, C홈쇼핑에 납품해봤자 남는 게 하나도 없다. 매출만 늘면 뭐하냐, 적자가 나는데" 하며 중소 제조업체를 착취하는 유통 대기업들을 질타했다. A사장은 "수출은 이익이 남는다. 수출을 많이 늘리는 데 최우선을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노엔텍처럼 글로벌 승부 걸어야

점점 쪼그라드는 내수시장, 사라져 가는 일자리는 ▦좀처럼 혁파하지 못하는 낡은 규제 ▦산업 혁신을 가로막는 기득권 집단 ▦중소기업의 부가가치를 빼앗는 유통 대기업의 횡포 탓이기도 하다. 안타깝지만 중소기업인들이 내수 약화와 규제, 기업환경, 대기업을 탓해봤자 쉽사리 개선되기는 경험칙상 난망한 일이다.

그것보다 글로벌 시장을 뚫어 수출기업 내지는 글로벌 강소기업이 되는 게 차라리 낫다. 우리 주위엔 이미 나노엔텍과 같은 모범사례들이 많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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