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세제정책의 기본골격은 감세정책이다. 구체적으로 유류세와 법인세를 인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유류세 인하는 감세정책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으며 감세정책의 핵심은 소득 관련 세금인하다.
참여정부는 조세정책을 ‘가진 자에 고통을 주는 정책수단’으로 사용해 정책목표는 항상 형평성 제고와 소득재분배 기능 강화였다. 그래서 새 정부의 감세정책, 그 중에서도 법인세를 대폭 인하하겠다는 정책방향은 매우 새롭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법인세 인하로 대표되는 감세정책은 지난 1980년대부터 시작됐으며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수단으로 모든 선진국가들이 이미 채택하고 있는 정책 방향이다.
감세정책의 뿌리는 영국의 대처 정부와 미국의 레이건 정부 조세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대부분 유럽 국가들이 복지정책을 강화하기 위한 재원확보 수단으로 증세정책을 편 반면 대처 수상과 레이건 대통령은 반대로 감세를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하면 세수 증가가 파생적으로 발생한다는 정책을 추진했다.
실제로 감세정책이 세수를 증가시켰는가에 대한 실증 결과는 뚜렷하지 않지만 감세정책이 경제주체들에게 경제활동에 참여할 경제적 유인책을 준다는 이론적 논거는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이러한 효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나게 되므로 실증적으로 규명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지난 1980년대 이후 모든 선진국가들은 감세정책을 채택했으며 그 배경에는 세계경제 개방화가 있었다. 개방화로 자본과 노동의 국가 간 이동 제약이 없어지면서 조세정책으로 형평성을 달성하려는 정책의도를 실현하기 어려운 환경이 돼버린 것이다. 세금이 낮은 곳이면 어느 곳이든지 움직일 수 있는 세상에서 형평성에 관한 한 조세정책은 ‘박제가 된 호랑이’가 된 것이다. 오히려 더 많은 경제자원을 각국에 끌어들이기 위해 세금이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됐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법인세율 평균치 변화를 살펴보면 지난 1996년 37.6%, 2002년 31.4%, 2004년 30%로 해마다 낮아지는 현상이 확연히 나타났다. 이처럼 세율을 서로 낮추려는 ‘조세경쟁’으로 조세정책을 통한 형평성 달성은 이제 신기루 정책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각국이 개방화로 인한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세금을 인하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조세정책에서 일어나고 있는 혁명적 변화로 러시아 같은 과거 사회주의 체제의 소득세제 단일세율을 들 수 있다. 소득세제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세목이고 소득분배를 위한 전통적 정책수단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소득세를 가지고 있는 대부분 국가들은 누진구조의 소득세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곧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세율이 높아지는 구조로서 경제적 타당성을 떠나 자본주의 체제하 모든 국가들이 누진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의 경우 지난 2001년 소득세제를 13%의 단일세율로 바꾸었고 이 시기를 전후해서 대부분의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이 단일세율의 소득세제를 도입한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도 너무나 민감한 정치적 세목이라 감히 접근하지 못하는 단일세율 제도를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이 먼저 도입한 것이다.
형평성이 지상 최대 과제였던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이 오히려 불공평한 단일세율을 도입했다는 것은 이제 조세정책은 효율성과 형평성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는 전통적 접근법에서 벗어나야 함을 시사한다. 성장이 없는 형평이 얼마나 한 사회를 피폐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인지를 뼈저리게 느낀 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오히려 성장을 위한 기반마련에 조세정책을 ‘올인’한 것이다.
새 정부가 법인세 인하계획을 발표하자 감세효과가 대기업에 집중된다는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도 많다. 이제 조세정책은 국내 문제만이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세계의 정책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 아무런 제약조건 없이 형평성 문제를 논의할 때 형평성 제고를 반대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형평성을 운운하면서 감세정책을 비판하기에는 세계의 경제시장이 너무도 변했다.
감세정책은 시대 흐름이므로 따라야 할 규범이지 선택해야 할 국내정책 방향이 아니다. 시대의 흐름이라고 해서 기호품의 유행에 따라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시대의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면 한국은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말기 때문에 필연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