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말 이후 국내 유입된 외국인 주식자금의 대부분이 투기적 성향이 있는 단기성 자금이어서 실물경기가 악화될 경우 대규모의 유출 가능성이 제기됐다. 경기가 차갑게 식으면서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한계상황에 부닥친 대기업의 비중도 15%로 늘었다. 기업의 부실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430조원에 달하는 자영업자의 부채는 가계부채에 이어 한국 경제에는 또 다른 뇌관이 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은행은 31일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유로지역 위기의 장기화, 국내외 경기부진, 가계부채 증가 등으로 거시건전성 여건이 악화됐지만 은행의 경영건전성이 여전히 나쁘지 않고 외환보유액 등의 증가로 외환건전성도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투기적 성향이 짙은 외국인 자금의 대규모 주식시장 유입, 대기업의 한계기업 비중 증가, 자영업자의 부채 급증 등은 금융시장의 불안요소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외국인 단기성 자금 급증…"실물경제 악화 때는 유출 가능"=유럽 부채위기로 대내외 실물경제가 악화될 경우 단기성 자금뿐만이 아니라 중장기성 민간자금까지 유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취약성이 다시 부각되고 외환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의 분석은 금융감독원과 한은이 공동으로 외환검사에 들어간다고 발표된 후에 나온 내용이라 관심을 끈다.
한은은 무엇보다도 7월 말 이후 주식시장에 유입된 외국인 자금이 상당부분 투기적 성향이 짙은 단기성 자금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실제로 7월 하순 30억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던 주식시장의 단기성자금은 빠르게 증가하더니 10월 중순에는 100억달러에 근접했다. 한은 관계자는 "유럽 위기가 완화된 1~3월 사이 들어온 단기성 자금 89억달러 가운데 64%가 4월에서 7월 사이 국외 금융시장으로 빠져나가며 환율 등 가격변수의 변동성이 확대된 바 있다"고 말했다.
◇경영어려움 직면한 대기업 비중도 크게 증가=경기가 차갑게 식으면서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도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6월 말 기준 상장기업 가운데 한계기업은 18%를 기록했다. 2010년 14%에서 4%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대기업 한계기업 비중도 11%에서 15%로 늘어났고 중소기업도 17%에서 21%로 증가했다. 한계기업은 은행의 중소기업 구조조정 대상 선정기준에 따라 최근 3년 연속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이거나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기업이다.
특히 대기업 집단에 속한 한계기업은 2010년 말 19개에서 2011년 말 22개, 2012년 6월 말 23개로 꾸준히 늘고 있다. 건설과 전자ㆍ철강ㆍ조선 산업 업황 부진이 이어진 영향이 컸다. 계열사 가운데 한계기업이 있는 대기업 집단은 다른 대기업보다 차입금 의존도가 크고 평균 차입금리도 높았다. 한계기업의 경영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한계기업이 속한 대기업 집단의 재무건전성도 함께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자영업자 부채규모 430조원…지난해보다 17% 증가=자영업자의 부채가 빠르게 늘면서 부실위험도 커졌다. 3월 말 기준 자영업자의 부채규모는 430조원 내외에 달한다. 부채증가 속도는 전체 가계부채 증가를 크게 앞질렀다. 자영업자의 부채는 2011년 1월부터 2012년 3월까지 무려 16.9%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가계부채 증가율(8.9%)을 크게 웃돈다.
자영업자의 부채가 급증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내수경기 부진으로 자영업자의 소득여건이 나빠져 사업체 운영자금과 생활자금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베이비부머 은퇴로 생계형 창업활동이 늘어나 창업자금 수요가 늘어난 것도 한 요인이다. 자영업자의 가구당 부채는 9,500만원으로 임금근로자 가구당 부채(4,600만원)의 두 배가 넘을 정도다.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 역시 자영업자가 219.1%이지만 임금근로자는 125.8%에 그쳤다. 한은은 "자영업자는 차입의존도가 높고 생산성이 낮은 업종에 집중돼 부채구조가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