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새벽을 여는 정신으로

어두운 새벽의 골목을 누비는 신문배달 소년의 빠른 발걸음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신문배달 소년을 함부로 여기지 말라. 1900년 세계에서 가장 부자였던 앤드루 카네기, 지난 90년대 세계 최대 부자였던 월마트 창시자 샘 월턴, 미국 대통령에 출마했던 백만장자 로스 페로 등의 거대 경제인들은 모두 신문배달 소년으로 경력을 시작한 저명 인사들이다. 어디 그들뿐이겠는가. 한국에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문배달 출신 경제인과 공직자들이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기업인들 어려울수록 희망을 그들은 모두가 부지런하며 한 집도 빠뜨리지 않고 배달하는 철저한 정확성이 몸에 배어 있었다. 한 소년은 후에 우리나라 경제의 주역 중의 한 사람이 됐고 다른 소년은 지금도 수도권의 시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 배달 소년들은 가난했다. 그들에게 가난은 치욕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가난이 학교였고 가난이 자산인 것을 몰랐을 테지만 카네기는 “가난처럼 좋은 학교가 없다”는 말을 남겼다. 시장의 수많은 상인들에게 신문을 배달하고 신문값을 받으러 다니던 그 소년은 이미 열살 안팎의 나이에 시장 상인들의 장사 수완을 몸소 체득했다. 그리고 꿈이 있었다. 가난에서 해방돼 부자가 되고 싶은 그 맑은 소년의 꿈은 강력한 힘으로 변했고 그 힘으로 그 소년은 큰 경제인이 됐다. 앤드루 카네기는 자기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결코 기업인의 길을 택하지 않았겠지만 숙련공인 아버지가 새로 나온 기계에 밀려 직장을 잃게 되자 어린 동생과 어머니를 가난이라는 굴레에서 구출하기 위해 다른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갈 열살의 나이에 배달 소년이 됐다. 그때 받은 첫 월급 1달러20센트를 손에 쥐었을 때의 기쁨은 훗날 수천억달러를 벌어 세계 최대의 자산가가 됐을 때에도 잊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카네기는 1900년 자기가 경영하던 카네기스틸을 매각해 당시 세계 최대의 철강 업체 US스틸을 창립했고 세계 최대의 자산가가 됐다. 은퇴할 때 그 많은 자산을 카네기 공과대학, 카네기 극장, 카네기재단을 비롯한 수많은 교육 자선 및 공익기관과 미국 정부에 기증을 하고 자신은 빈손으로 열살 때까지 자랐던 고향 스코틀랜드로 돌아간 것이 기업인으로서 보여준 마지막 장면이었다. 그가 남긴 자산보다 더 값진 것이 있다. 후배 경영인들에게 그의 생애와 사상을 설명해주는 저서 ‘기업의 제국(Empire of Business)’을 집필한 것이다. 100년 전 카네기가 남긴 어록 중에는 지금도 기업 경영의 철칙으로 삼을 귀중한 말들이 담겨 있다. 그중의 몇 구절만 열거한다면 “나에게는 언제나 지금보다 잘되고 싶은 꿈이 있었다” “기업인으로 성공하려면 벼락부자가 되겠다는 막연한 환상을 버리고 절대로 남의 보증을 서지 말라” “가장 이른 시간 안에 상사의 상사가 되라” “노동자의 가장 큰 적은 자본가가 아니고 노동자 자신들이다” “부자로 죽는 것은 치욕이다” 등. 기적 일궈낼 도전정신 필요 이 나라의 경제 현실은 어떤가. 기존의 관습과 새로운 법질서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기의 사무실과 감옥을 오락가락하는 망령에 시달리는 경제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우리 스스로 잘 알고 있다. 한 세대는 가고 그 다음 세대가 오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세대는 다 가고 있지만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낼 새벽길의 빛나는 눈동자는 보이지 않는다. 강대국 중국과 일본에 끼어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는 일류대학의 캠퍼스가 아니고 눈 덮인 새벽길에서 찾아야 할 때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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