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16일] 랜드 폭동

분노한 백인 광부들이 경찰 무기고를 털었다. 진압에 나선 정부는 전투기를 동원해 군중의 머리 위에 폭탄을 퍼부었다. 153명 사망, 534명 부상. 1922년 3월16일, 광부들은 손을 들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생한 ‘랜드 폭동(Rand Revolt)’의 개요다. 폭동은 실패했지만 악명 높은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로 이어졌다. 광부들을 거리로 내몬 것은 물가고와 감원, 급여 삭감. 국제금값이 떨어지자 광산주들은 인건비를 깎았다. 저임금의 흑인을 채용하는 광산이 늘어나자 1921년 말 백인 광부들은 광범위한 직업군을 백인의 전유물로 규정한 불문법 ‘컬러 바(Color Bar)’를 들고 나섰다. 컬러 바의 붕괴가 백인 우월주의의 종말이라는 호소는 백인 사회를 단결시켰다. 만국의 노동자는 형제라며 사해동포(四海同胞)주의를 부르짖던 공산당도 여기에 동조, 이념보다 피부색이 우선한다는 ‘백색 공산주의’ 사례를 남겼다. 지지가 확산되며 파업은 최대 금광인 랜드 지역에도 퍼졌지만 광산주들은 꿈적하지 않았다. 흑인 대체투입으로 급해진 광부들은 무장을 갖췄다. 보어 전쟁과 1차 대전에서 실전을 익힌 퇴역 군인들을 중심으로 특공대도 조직했다. 특공대가 흑인들을 살해하고 경찰서를 습격하자 정부는 소요를 ‘반란’으로 규정, 진압에 들어갔다. 사태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요하네스버그 시내에서 사흘간 벌어진 총격전 결과 정부군이 승리하자 광산주들은 마음 놓고 사람과 임금을 잘랐다. 거리에 나앉은 광부들은 선거를 기약하며 이를 갈았다. 투표권을 독점한 백인 유권자들의 선택은 인종차별정당. 차별정책은 1991년까지 인권을 짓밟았다. 뒤틀린 노동운동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백인 우월주의든 귀족ㆍ부패노조든. 용어만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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