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 성급한 의료산업화 정책 경계한다

국내 의료정책은 건강보험제도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전국민 의료보장에 성공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국민의 의료비 부담은 가장 낮지만 평균 수명 77.5세, 1인당 연평균 의료 이용은 14.9회로 국민 부담 대비 국민건강 및 진료 수준은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의료의 질적ㆍ서비스 수준이 낮다며 의료산업화정책을 추진해 외화 획득과 고용 증대를 도모하겠다고 한다. 의료산업화정책은 민간 자본을 유치해 영리병원을 설립하고 건강보험 진료수가와 요양기관당연지정제에서 제외시켜 영리병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민간보험을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의료산업화는 의료 공급자와 소비자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공보험에 불만이 있는 계층이 민간보험에 가입하도록 함으로써 건강보험 자체를 흔들 수 있다. 극단적으로는 사회 보장을 위한 공적 보험인 건강보험을 약화시키고 시장원리에 의한 민영보험은 활성화시켜 국가적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할 수도 있다. 공보험은 소득재분배라는 기능을 갖고 있는 동시에 의료산업의 성장에도 필수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성장과 분배를 위해 어느 정책이 더 중요할까. 성장도 분배도 모두 등한히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제도와 정책을 어느 쪽으로 추진하는 것이 성장, 또는 분배의 측면에서 더 바람직하냐는 점이다. 다시 말해 성장과 분배의 양자택일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의료산업의 성장을 촉진하는 제도와 정책, 분배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제도와 정책은 어떤 것일까 하는 보다 실천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다. 어떤 제도나 정책은 산업의 성장을 촉진시키겠지만 분배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산업의 성장을 촉진시키면서 동시에 불평등 완화에 도움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참여정부는 개혁과 분배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의료산업화의 핵심인 병원주식회사 도입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가 가져오는 부작용은 적지 않다. 정부가 걱정하고 있는 빈부 격차, 사회 양극화 해소에 도움은커녕 이를 촉진시킬 가능성이 더 높다. 따라서 의료산업화정책은 건강보험이 사회안전망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적어도 80% 수준이 됐을 때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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