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마네(島根)현 의회의 독도 조례 제정을계기로 악화일로를 겪고 있는 한일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온 국민의 분노에다가, 일본 정부의 비아냥 섞인 미온적대응이 맞물리면서 정부의 대일 기조가 더욱 더 단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례 제정 당일 외교통상부 대변인 명의의 규탄성명에 이어 17일 정부의 새 대일 정책 기조를 천명한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성명을 발표했는데도 불구, 일본 정부가 `세월이 약'이라는 식으로 사태를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가려고 하자, 국가원수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일본 정부를 향해 직접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노 대통령은 23일 `국민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에서 시마네현 의회의 조례제정,일본 우익교과서의 역사왜곡,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등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해 우리 정부와 본인이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 지를 분명히 했다.
이들 사건은 36년간의 잔혹했던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정당화해 해방의 역사,더 나아가 대한민국 자체를 부인하는 행위라는 것이 노 대통령의 인식이다.
이런 행위들은 "또 다시 패권주의를 관철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으며, "일개 지자체나 일부 몰지각한 국수주의자들의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집권세력과중앙정부의 `방조'아래 이뤄지고 있다"는 판단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부시 미 행정부의 적극적 후원아래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 및 재군비, `보통국가화' 움직임 등에 대한 우려도 그대로 담았다.
이런 연장선에서 노 대통령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미래를 위해 더 이상 `조용한외교'를 하며 사태를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일본이 `행동'으로 반성하고 과거를 청산하지 않으면 정면대결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일종의 `출사표'인 셈이다.
노 대통령이 "각박한 외교전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다가 경제.사회.문화 기타여러 분야의 교류가 위축되고 그 것이 우리 경제를 어렵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생겨날 수 있다"고 밝힌 점은 최악의 경우에도 대비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제 우리도 어지간한 어려움은 충분히 감당할 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적으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을 위해 꼭 감당해야 할 부담이라면 의연하게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국민에게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수할각오를 다져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국내 일각에서는 꼭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야 했느냐는 비판적 시각도 나오고 있으나, 우리 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잘 보여주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적지 않다.
한 국내 전문가는 24일 "노 대통령은 일제 식민지 통치로 일본은 분명히 역사적부채를 지니고 있는데도 불구, 현재 일본의 주도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일본의전후세대는 역사에 대한 부채의식이 없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며"그래서 일본을 향해 정확한 사태인식을 직접 촉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와 노 대통령의 강도높은 `주문'에도 불구, 일본 정부는 불만을 감춘 채 `냉정한 대처'를 되풀이 하면서 제 갈길을 가는 모습이어서 한일관계가다시 제 자리를 찾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미래지향적으로우호.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간다는데 서로 흔들림이 없다고 확신한다"고 말했고, 다카시마 하쓰히사(高島肇久) 외무성 대변인도 기자들에게 "(노태통령의 글을) 정밀분석 중이며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미래를 향해 화해의 정신으로 마음속에 맺힌 것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다음 달 5일로 예정된 후소샤(扶桑社) 역사교과서의 일본 문부과학성의검정결과가 현행본보다 개악되거나, 납득할 만한 수준에 못미칠 경우 한일 양국간은물론,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외교전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 경우 정부는 유엔인권위를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에서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더욱 적극 제기하고, 중국 등 일제 식민지 피해국가들과 연대해 일본의 `대망'(大望)인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저지하는데 외교력을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연합뉴스) 이 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