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서 국가적 재앙처리는 그 재앙처리 과정에서 절대로 정치화 혹은 이념화되지 않고 재앙처리 자체에 몰입하면서 신속하게 매듭짓는다. 그러나 후진국 혹은 국정 효율성이 낮은 나라에서 국가적 재앙처리는 정치화·이념화, 혹은 종교화돼 분열과 갈등을 겪는다. 이러한 분열과 갈등을 겪으면서 국가적 재앙은 계속 확대 혹은 다른 재앙으로 재생산된다.
자유민주주의와 경제발전 측면에서 세계인들의 부러움을 사는 우리 대한민국은 근래 국가적 재앙을 맞을 때마다 그 재앙이 정치화 혹은 이념화돼 온갖 갈등과 혼란들이 야기되는 고질병을 안고 있다. 2010년대 이후 천안함 폭침사건도 그랬고 지금 온 국정을 거의 마비시키는 세월호 침몰사건도 그렇다. 국가적 재앙처리는 절대로 정치화 혹은 이념화돼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적 재앙이 정치화 혹은 이념화가 되면 재앙을 분석하는 과정서부터 객관성을 상실케 된다. 정치인들은 국가적 재앙 원인 분석을 정파적 목적을 갖고 분석하려고 하며 이념꾼들은 이념적 투쟁목표에 사건의 초점을 맞추면서 재앙 원인을 분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사건 본질에 충실한 것처럼 위장한 후 사실상 정치적 목적 혹은 이념적 투쟁 목표달성을 위해 이전투구를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치적 혹은 이념적 선동들이 난무하게 되면 무엇이 본원적인 문제이고 무엇이 부수적인 문제인지 대혼란이 초래되면서 갈등이 다른 갈등을 낳게 하고 투쟁이 다른 투쟁을 낳게 되면서 수많은 다른 이슈들을 양산하게 된다.
둘째 국가적 재앙처리에 정치꾼들 및 이념꾼들이 끼어들면 재앙의 해결방안을 두고 더 큰 혼란과 갈등을 초래하게 된다. 재앙의 원인분석을 자기들 정파적 이익 혹은 이념적 투쟁목표에 초점을 두고 분석했기 때문에 해결방안도 재앙의 본질과 관계없는 이상한 해결방안들이 제시되는 경우가 흔하다. 국가적 재앙은 그 재앙의 원인을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분석한 후 다시는 그러한 재앙이 없도록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값진 교훈들을 정리함이 세계적인 상식이다. 필자는 얼마 전 미국이 맞았던 세기적 큰 재앙인 2001년 뉴욕 911테러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13년 전 하늘 높게 솟아 있었던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현장에는 정방형 대리석으로 잘 단장된 빈 공간 속에 맑고 깨끗한 물들이 쏟아지는 큰 공원이 건설돼 있었다. 바로 그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새로 만든 박물관 벽에는 당시 구조 활동을 하다가 희생된 수많은 소방관들 이름이 영원한 미국의 영웅으로 새겨져 있었으며 그 재앙에 대한 참된 의미와 교훈을 정확하게 정리해놓았다. 재앙을 처리하면서 정치인들 간 소란이라든가 이념꾼들의 개입 없이 재앙은 재앙 그 자체로서 차분하게 처리했다. 2,977명이라는 엄청난 희생자들의 유가족들과 국민들은 국가 입장을 이해하고 국가는 유가족들의 아픈 마음을 깊게 이해하면서 그 재앙은 역사 속에서 미국을 더 발전케 하는 큰 의미를 갖도록 재앙처리가 마무리됐다. 그 사건이 정치화되고 이념화됐더라면 이러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셋째 재앙이 정치화 혹은 이념화되면 희생된 분들에 대한 순수한 추모의 마음도 순수성을 잃게 된다. 희생당한 분들에 대한 추모정신도 정치화 혹은 이념화 과정을 겪으면서 변질되고 변질된 추모정신에 많은 국민들은 순수한 추모의 마음을 잃게 된다. 국가적 재앙의 정치화 혹은 이념화는 결과적으로 희생자들을 욕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국가재앙이 정치화 혹은 이념화되면 재앙을 처리해야만 하는 국가기관들은 불능화 상태가 되고 대신 정치인 및 이념꾼들이 재앙처리 주역이 돼 기이한 국정처리로 변질된다. 지금 세월호 사건처리에서 가장 합리적인 방안 중 하나는 사건에 개입돼 있는 정치인·이념꾼들이 모두 물러가고 그 자리에 진정한 유가족 대표들과 해당 주무관청이 주역이 돼 그 재앙을 차분하게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마음을 갖고 마무리 짓는 일이다.
송대성 세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