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선택의 순간들] <5> SK 이동통신 진출

"10년후 새 성장동력" 과감한 베팅<br>94년 한국이통 무려 주당 33만5,000원에 인수 결단<br>특혜시비 불거지자 7일만에 사업권 반납 '통큰 선택' <br>현 주가 6배이상 가치 상승 "혜안이 낳은 블루오션"





[선택의 순간들] SK 이동통신 진출 "10년후 새 성장동력" 과감한 베팅94년 한국이통 무려 주당 33만5,000원에 인수 결단특혜시비 불거지자 7일만에 사업권 반납 '통큰 선택' 현 주가 6배이상 가치 상승 "혜안이 낳은 블루오션" 이규진 기자 sky@sed.co.kr 지난 94년 1월말. 민영화를 위해 공개입찰에 붙여졌던 한국이동통신의 최종 입찰가격 뚜껑이 열리는 순간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선경그룹(현 SK)이 인수가격을 주당 33만5,000원이라는 당시로선 상상을 뛰어넘은 금액을 써넣었기 때문이다. 결국 선경그룹은 4,271억원에 인수자로 최종 선정됐고 미래 성장동력을 단숨에 거머쥐었다. 고 최종현 회장이 한국이동통신을 시세보다 비싸게 산 데는 특혜시비를 없애겠다는 뜻만 담겨있는 게 아니었다. 비싸게 산 만큼 반드시 정보통신사업에서 성공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그룹 전체가 망할 수 있다는 일종의 ‘배수진’이었다. ◇‘10년 뒤를 내다본’베팅=한국이동통신의 공개입찰을 며칠 앞두고 있던 어느날. 최 회장이 김창근 재무담당 임원(현 SK케미칼 부회장)을 급히 불러들였다. 최 회장은 김 부회장에게 대뜸 “지금 시세로 한국이동통신을 사면 얼마나 비싸게 사는 건가”라고 물었다. 당시 한국이동통신은 인수전에 휩싸여 주당 5만원에 머무르던 주가가 30만원까지 치솟아 그룹 내에서조차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거세지고 있었다. 최 회장은 “회사 가치를 따져보면 2,000억원을 더 주고사는 셈”이라는 김 부회장의 대답에 잠시 생각에 잠긴 후 “10년 이내에 1조~2조원의 이익을 낼거야. 비싸더라도 무조건 사”라고 지시했다. 이는 그룹차원에서 정보통신사업을 착실하게 준비해 온데다 정보통신사업의 미래가 밝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 2,000억원을 더 물더라도 결코 비싼 게 아니라는 나름의 판단을 갖고 있었다. 당시 선경그룹의 전체 경상이익은 1,000억원. 2년치 그룹 경상이익 전부를 쏟아붓는 과감한 베팅이었다. 최 회장은 인수를 적극 말리는 임원들에게 이렇게 장담했다고 한다. “회사가치는 키워가면 된다. 두고 봐라. 우리는 기마민족이고 성격이 급해서 휴대폰 이용률이 다른 나라와 비교가 안될 거야”라고 말이다. ◇‘사업권 반납’의 승부수=이보다 앞선 92년 8월말 선경그룹은 어렵게 따낸 제2 이동통신사업자 사업권을 자진 반납한다고 선언했다. 공정한 심사에도 불구, 당시 현직 대통령이 최종현 회장의 사돈이라는 이유로 특혜 시비가 불거졌다. 정치권은 이를 쟁점화, 정략의 제물로 삼았다. 혼란스런 위기 국면에서 최 회장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사업자 선정 7일만에 사업권 반납을 결행한 것이다. “사업권을 반납하는 것은 특혜를 받아서가 아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것이 그룹의 경영이념과 사업참여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보통신 사업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류 통신기업으로 재도약하기 위한 일보후퇴일 뿐이다” 큰 흐름을 꿰뚫고 의연하게 사업전략을 구사하는 통큰 선택이었다. 실제로 선경그룹은 사업권 반납으로부터 1년반 뒤인 94년초 한국이동통신을 인수, 어떠한 시비도 없이 당당하게 정보통신사업에 깃발을 꽂았다. ◇혜안이 낳은 블루오션=SK그룹이 정보통신 사업에 뜻을 품은 것은 26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선경그룹은 80년 정유사인 유공(현 SK㈜)을 인수하면서 '석유에서 섬유까지'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하지만 선경그룹은 차기 성장동력이 더 필요했다. 이때 나온 것이 바로 ‘시장선점’의 원칙이었다. 그룹 전체에는 ‘리더로서의 경쟁력과 장기적 발전이 가능한 사업을 찾으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이 같은 원칙에 따라 선경그룹은 2년여의 검토 끝에 정보통신사업을 차세대 성장사업으로 정했다. 오늘날 통신과 정유업을 양대축으로 하는 SK그룹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제 통신사업은 SK그룹을 4대 그룹의 반열에 올라서게 한 일등공신이라는 점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SK텔레콤은 국내 1위의 통신사업자로서 현재 가입자수 2,000만명에, 지난해 매출액도 10조원을 돌파했다. 당기순이익만 1조8,714억원을 남겼다. 94년 당시 고가 매입 논란을 빚었던 한국이동통신의 주가는 30만원대. 지금은 액면분할을 한 주가가 18만원대로 6배 이상 가치가 상승했다. 현재 시가대로 인수한다면 단순계산만으로 3조원은 족히 든다. SK텔레콤은 세계 최초 CDMA 기술 상용화 성공에 이어 세계 최초 2.5세대 CDMA 2000 1X 서비스, 세계 최초 3세대 동기식 IMT-2000(CDMA 2000 1xEV-DO)상용화 등 글로벌 기술을 선도하며 문자 그대로 ‘블루오션’을 선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보통신 기업으로 우뚝 올라섰다. ● CDMA 96년 상용화 성공 "단숨에 기술 선진국으로" 통찰·추진력이 일군 쾌거 #장면1. 세밑 분위기로 한창 들떠있던 95년12월31일. 한국이동통신 경영진들은 인천 도로 한복판에서 일제히 환호성을 질러댔다. 시험차량이 고속으로 달려도 휴대폰 통화가 단 한 차례도 끊어지지 않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쉽게 믿기 어려웠다. 바로 '단군 이래 가장 큰소리칠 만한 기술'이라는 CDMA(부호분할다중접속)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장면2. 2006년 8월29일 서울 롯데호텔. 최태원 SK㈜회장은 중국정부와 3세대 이동통신 표준인 TD-SCDMA(시분할연동코드분할다중접속) 기술 협력에 합의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해외 통신서비스 업체가 중국 3세대 표준 상용화에 참여하는 것은 SK텔레콤이 최초다. SK텔레콤은 3세대 후속 기술 및 4세대 분야 등 통신산업 분야에서 거대한 중국시장을 확보하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을 일약 통신 선진국으로 끌어올린 CDMA 기술은 SK그룹의 탁월한 통찰력과 강력한 추진력이 빚어낸 산물이다. 94년 인수때만 해도 한국이동통신은 아날로그 기술 밖에 없었다. 전세계 이동통신업계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대전환기를 맞고 있었다. 문제는 디지털 방식 중 어느 것을 택하느냐는 것. 당시에는 이미 시분할다중접속(TDMA)형 GSM 방식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고 CDMA 방식은 후발주자였다. 수용용량을 보면 CDMA 방식이 GSM 방식보다 5배라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CDMA 방식은 상용화한 사례가 전무하고 기술 구현 자체가 굉장히 까다로왔다. 선경그룹은 여기서 또다시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던진다. GSM기술의 꽁무니를 따라가느니 새로운 블루오션을 개척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 그룹 관계자는 "CDMA 상용화에 성공하면 단숨에 기술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 기술수준은 디지털은 커녕 아날로그 이동통신 시스템에 대한 기술 기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고 회상했다. 특히 당시 시장상황은 결코 호의적이지 못했다. 이무렵 한국통신(KT의 전신)은 PCS사업권을 획득한다는 방침 아래 CDMA방식 대신 GSM방식 도입을 검토했다. 삼성 또한 GSM방식 도입에 긍정적이었다. LG만 CDMA 개발을 고수한다는 입장이었다. CDMA 상용화에 앞서 신세기통신과 경쟁을 벌이고 있던 한국이동통신은 PCS 기술표준 문제로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이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SK그룹은 거침없이 밀고 나갔다. 한번 결정하면 강력하게 추진하는게 SK그룹의 특징. 전자교환기(TDX)개발의 주역이자 과학기술부장관을 지냈던 서정욱씨를 한국이동통신 사장으로 영입하는 등 고급 두뇌를 과감히 끌어들였다. 바로CDMA기술 상용화를 위한 올인전략이었다. 직원들은 밤낮을 지새며 CDMA시스템 개발에 전력투구했다. 밤낮없이 기술 안정화에 노력해온 한국이동통신 측은 95년 6월 CDMA기술의 우월성을 검증하기 위해 개최한 'CDMA 이동전화 시연회'에서 성공적인 통화품질을 선보였다. 이는 정부와 국민에게 소문만 무성하던 CDMA 시스템의 위력을 만천하에 알리는 계기가 돼 이듬해 서비스 상용화의 전기를 만들어냈다. 82년 정보통신사업 진출의 뜻을 세운 SK그룹이 마침내 96년 CDMA 상용화에 성공, 통신사업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만드는 순간이었다. 입력시간 : 2006/09/03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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