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칸톤(州)가운데 가장 작은 '추크(Zug)칸톤'. 서쪽으로는 여행지로 유명한 루체른, 북쪽으로 취리히와 맞닿아 있는 해발 1,200미터의 이 곳 스위스 고원 도시는 요즘 변화의 바람이 한창이다. 과거 빈곤한 시골 지역인 이곳은 10년 전부터 명품숍과 고급 레스토랑이 즐비한 거리로 탈바꿈하고 있다. 전 세계 내놓으라 하는 기업들도 속속 이 도시로 모여들고 있다. 추크 호수를 끼고 있는 추크시는 90개 이상의 국적을 가진 2만4,000여 명의 인구가 모여 사는 국제 도시다. 지난해 스위스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힐 정도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추크시가 이처럼 주목을 받는 이유는 주 정부에서 매기는 낮은 세율 때문이다. ◇저 세율 지역이 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나라 전체가 조세 피난처인 스위스 내에서도 추크는 '천국 속의 천국'으로 꼽힌다"고 보도했다. 추크 시의 개인소득세율은 22.9%, 법인세율은 15.4%로, 스위스 평균 세율보다 낮고 미국에는 한참 못 미친다. 이런 이유로 상품거래 업체인 글렌코어 등 세계적인 기업들의 본사가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까지 3만 여개의 기업들이 등록돼 있다. 최근 10년 간 2만1,000여개 기업이 이 곳으로 이동했다. 기업들이 몰리면서 추크 시에는 필요한 사람을 구하기 힘든 '인력난' 마저 나타나고 있다. 주 정부 금고 역시 넘치는 세수로 주체하기 힘들 정도다. WSJ는 "추크시가 새로운 조세회피처로 기업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며 "이 때문에 미국과 영국 등 높은 세금을 매기고 있는 국가들로부터 불만이 쇄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신문은 "미국은 법인 소득세율을 최고 35%까지 적용하고 영국도 지난해 고소득자에 대해 세율을 50%까지 늘렸다"며 "미국과 영국의 기업이나 부자들이 이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잉, 씨티그룹 등 미국 주요 기업의 조세회피를 다룬 '보물섬'의 저자 니콜라스 색슨의 말을 빌려 '실망스런 스위스의 세금(Swiss tax swizz)'이라고 혹평했다. 스위스 추크에 못지 않은 곳이 미국 동부 대서양연안의 델라웨이주(州)다. 지난 2009년 조세피난처 반대운동을 펴는 조세정의네트워크(TJN)가 내놓은 조사결과에서 ' 최고의 조세피난처'로 꼽혔다. 면적이 우리나라의 15분의 1에 불과한 델라웨어주에는 주민 수와 비슷한 70만개의 기업이 등록돼 있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법인의 절반 가까이가 이곳에서 금융거래를 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이 곳에 몰려 있는 이유는 바로 '세제 혜택'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TJN의 평가를 인용해 "델라웨이주는 주 밖에서 발생한 이익에 세금을 물리지 않는 데다 실존하지 않는 서류상 회사(페이퍼컴퍼니)의 금융거래도 인정하는 등 조세회피를 원하는 개인이나 기업에게 '천국의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싱가포르 홍콩 새 '텍스 헤븐'으로=싱가포르와 홍콩도 재산을 숨기고 세금을 회피하려는 부자들의 새로운 은신처로 부상하고 있다. UBS 등 스위스 계 은행들마저도 부자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프라이빗뱅킹(PB)사업을 따로 떼어내 싱가포르와 홍콩 등으로 옮길 정도다. 싱가포르는 스위스처럼 은행 비밀주의를 허용하는데다 해외 수익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조세 회피목적으로 회계가 불투명한 기업들의 설립도 용인해주고 있다. 홍콩은 자본 이득과 예금 이자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기업들에 대해서도 홍콩 내에서 창출한 수익에 대해서만 세금을 부과한다. 뉴욕타임즈와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보스턴컨설팅의 조사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PB 자산은 지난 2000년에서 2008년 사이에 6배나 늘어났고 현재는 5,000억 달러를 넘어선 상태"라며 "홍콩의 PB자산 규모 역시 현재 2,000억 달러를 이미 넘어섰다"고 언급했다. 리차드 머피 TJN 설립자는 "싱가포르는 스위스식 비밀주의 규정 하에 자본 이득과 해외 수익에 대해 세금을 거의 부과하지 않고, 예금주들에게 비 실명 계좌를 허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회계 손실 과대포장 편법도=이 밖에도 '텍스 헤븐'을 찾아 이동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기업들은 '회계상 손실 확대'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세금을 덜 내고 있다. 손실을 과대 포장해 세금공제 등의 혜택을 받아 결과적으로 세금을 줄이는 전략이다. 유럽 미국 등은 기업 손실에 대해 세금을 공제해주고 신용을 확대해 대출 등에서 유리하도록 도와준다. 기업들이 이 세금공제 혜택을 챙기기 위해 일부러 손실이 많이 난 것처럼 회계상 장부를 꾸몄다는 얘기다. OECD 조세정책국의 라파엘 루소는 "이 같은 행위가 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혼을 위반하는 것과 같다"며 "기업들과 부자들의(세금회피)게임의 법칙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