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구조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는 '마이다스아이티'는 불과 14년 전에 창업한 국내 회사다. 그런데 두바이의 세계 최고층 빌딩 브루즈칼리파, 베이징올림픽 메인스타디움 등 세계 각국의 랜드마크가 이 회사가 직접 만든 소프트웨어 설계로 지어졌다. 포스코건설 출신 직원이 만들어낸 이 회사가 지금은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업체 중 하나로 떠올랐다.
# 최근 국내 조선업계에서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칸(KHAN)이 화제다. 대우조선해양 출신이 창업한 이 회사는 그간 외국 업체들이 독식하던 해양플랜트 시운전·설치·설계 등 서비스 영역에 본격 진출하며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우리는 해양플랜트 강국이지만 그간 3대 조선사 위주의 플랜트 제조 말고는 다른 부가가치를 만들지 못해왔다.
성장이 정체된 주식회사 대한민국에 이들 강소기업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벌써 수년째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정부의 어떤 정책도 명확한 비전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정부는 그동안 '서비스 강국 도약' '금융허브 조성' '창조경제 실현' 등 다양한 성장 비전을 내놓았다. 이들은 총론으로서만 매력이 있을 뿐 각론으로 들어가면 구체적인 실현계획이 너무 미흡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성장률이 꾸준히 떨어지자 정부는 재정투입으로 가까스로 성장률을 방어해왔다. 하지만 밀려드는 복지수요와 산더미 같은 국가부채 때문에 이제는 그마저도 힘들어진 상황이다. 결국 민간에서 성장의 활력을 찾아야 하는데 새로운 부가가치를 어디서 창출할 수 있느냐가 불투명하다.
전문가들은 이제 '모(제조업·수출) 아니면 도(서비스업·내수)' 식의 성장정책을 버릴 때라고 지적한다.
강한 제조업에서 파생되는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만들고 경제성장의 주축이 될 수밖에 없는 수출의 질을 한 단계 높이는 것이 지속성장의 해법이라는 것이다.
◇제조업, 빼앗긴 부가가치를 찾아와라=서비스 시장을 개방해 홍콩과 같은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나 세계 금융허브를 키우자는 서비스업 발전 구상은 지금 돌이켜보면 말 그대로 장밋빛 청사진에 불과하다. 이제는 보다 현실적인 부가가치를 찾아야 할 때가 됐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마이다스아이티나 칸 같은 기업들은 그런 측면에서 우리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들 기업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강점을 가진 건설·플랜트 등 제조업을 지원하는 고부가가치 서비스업 시장 공략에 성공한 예다. 지금까지 우리 업체들이 아무리 고층빌딩을 짓고 플랜트를 수주해도 부가가치의 대부분은 외국 업체로 넘어갔는데 이제 그 부가가치를 찾아와야 성장동력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엔지니어링, 디자인,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를 비롯해 제조업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서비스 산업군이 모두 집중공략 대상이 돼야 한다.
윤우진 산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전략은 제조업의 우위를 지키면서 서비스업은 제조업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분야로 클러스터를 형성해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스템을 수출해야 먹거리가 늘어난다=고령화 시대에 진입한 대한민국에서 내수시장의 한계는 뚜렷하다. 수출이 성장의 해법인데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3년 연속 가까스로 무역 1조달러를 달성했다지만 이는 역으로 3년 연속 1조달러의 굴레에 갇혀 있다는 말도 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하드웨어(양)와 소프트웨어(질)를 결합하는 '프로젝트형 수출'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부 정책으로 특정 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이제 한계에 부딪혔고 한국판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경쟁력이 확보된 분야에서 수출 부가가치를 최대한 높이는 것이 현실적 대안인데 우리의 강점인 제조업과 농업 등에서 시스템 전반을 해외에 통째로 수출하는 프로젝트 수출 시장이 새로운 성장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주관으로 농업 시스템 수출에 성공한 알제리의 '씨감자 프로젝트'가 대표적 성공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농진청은 지난 2007년부터 알제리에 씨감자 생산기지를 건설해 조직배양과 수경재배 기술 등 사막에서 가능한 씨감자 생산의 핵심기술을 지원하면서 막대한 수출성과를 올리고 있다. 동북아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중계무역 활성화 역시 중요한 과제다. 제품수출만 늘려서는 무역 2조달러 달성은 요원한 과제다.
중국 시장을 겨냥한 한국·일본의 합작투자가 자유롭게 이뤄져야 하고 국제적인 석유비축 시스템인 동북아 오일허브가 성공해야 중계무역을 통한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도 가능해진다.
◇혁신의 주체는 민간, 관치와 정치 버려라=세계 경제위기 이후 각국이 성장정책을 만들어내는 의사결정 시스템은 매우 빨라졌다. 의사결정이 신중하기로 유명한 일본은 가장 저돌적인 성장정책을 추진하는 국가로 떠올랐다. 하지만 우리의 의사결정 속도는 오히려 더뎌지고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정치 리스크가 너무 심한 코스트(비용)가 돼가고 있다"며 "이 문제를 해소하고 정책실행력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정산업 육성법 등 정부 주도로 설계돼 있는 산업정책의 법체계도 개선해야 할 과제다. 민간의 혁신을 따라가지 못하는 정부가 여전히 법률을 통해 산업정책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윤 선임 연구위원은 "정부 중심의 법규는 역동적 산업발전과 부합하지 않으므로 기술·지식·인력 등 생산요소의 축적에 초점을 맞춘 시장중심적인 법체계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