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가 지난해부터 휘몰아친 '구조조정 광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인력감축이 대대적으로 진행될 때만 해도 그 정도면 충분할 줄 알았다. 올 들어 지난해보다 더 나빠진 실적 성적표를 받아든 증권사 직원들은 요즘 1층 밑 지하실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과 NH농협증권을 합친 초대형 증권사의 탄생은 증권시장의 지각변동과 동시에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불러일으킨다. 증권사건 증권사 직원이건 적정 수준이 될 때까지는 처절한 다이어트 처방이 내려질 수밖에 없다. 그때까지 살아남는 게 경쟁력이다.
1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업계에 종사하는 인력은 지난해 말 현재 4만241명으로 지난 2011년 말보다 5.9%(2,561명) 줄었다. 2009년 말 4만1,326명에서 2011년 말 4만2,802명으로 소폭 늘었다가 다시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증권가의 인력감축 작업은 올해 더욱 가속화한다. 특히 증권업계에서는 '1만5,000명 감축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박건영 브레인자산운용 사장은 "증권업계가 정말 한계 상황"이라며 "지난해 구조조정을 통해 증권업계 직원이 많이 나갔지만 지금 정도의 실적 수준을 감안하면 앞으로 1만5,000명이 더 짐을 싸야 할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지금은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며 "올해는 인력 구조조정이 더 강력하게 진행돼 2만명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정태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현재 상황은 증권업종의 수익개선이 막막한 상태"라며 "비용절감을 위한 구조조정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의 구조조정 배경은 수익성 악화에 있다. 국내 62개 증권사는 2013회계연도(2013년 4∼12월)에 1,098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2002회계연도 이후 첫 손실을 낸 것이다. 증권사 28곳이 적자였고 흑자를 낸 곳도 규모는 초라했다. 지난해 10~12월에는 2,000억원이 넘는 순손실로 악화일로의 상황을 보여줬다. 분기 순이익이 5,000억원에 달하던 게 불과 2~3년 전이기에 격세지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수익악화는 근본적으로는 증시침체의 영향이 컸다. 상장주식 하루 평균 거래액은 2011년 9조1,000억원에서 지난해 5조8,0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다행히 이달 들어 하루 평균 거래액이 6조3,000억원 수준으로 올라왔지만 증권사 수익개선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제기된다. 현재 증권사의 평균 위탁매매수수료율은 0.0996%로 2007년 대비 약 33% 줄어든 수준이다.
수수료율이 깎인 것은 증권사가 넘치고 수익은 줄다 보니 고객유치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증권업계는 현재의 수수료율은 거래액이 9조원 정도 형성될 때 수익이 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9조원대 거래대금이 있을 때는 저가 수수료 영업을 해도 규모의 경제가 실현됐지만 지금의 거래량은 수수료를 받아도 적자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수수료를 깎는 출혈경쟁이 수익을 추가로 갉아먹는 악순환을 자초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62개에 달하는 증권사도 증권인력과 똑같은 차원에서 구조조정이 검토, 추진되고 있다. 이번 우리투자증권의 매각 완료로 당장 투자은행(IB)시장의 판도변화가 예상된다. IB시장 참여자인 현대증권과 올해는 아니지만 KDB대우증권이 어디로 매각되는지에 따라 IB시장의 구도 자체가 바뀐다. 중소형 증권사는 애플투자증권·한맥투자증권 등을 시작으로 이미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으며 아이엠투자증권 등 6~7개의 매물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정부가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공언한 상황이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증권사들의 합종연횡은 올해를 기점으로 대대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구조조정의 와중에 증권사들은 스스로 살길을 찾아 변신을 도모하는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증권사가 활용할 수 있는 자본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증권사의 평균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은 479%에 달한다. 영업을 위한 필요자금의 5배가량을 충당금으로 쌓아놓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증권사가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거나 수익 모델을 만들지 못한다는 점이다. 손미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대형 증권사는 자본이 있지만 투자처를 확보하지 못해 수익확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주식 위탁매매 위주의 영업에서 벗어나 자기자본을 활용한 재무적투자(PI)와 IB 업무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손 연구원은 "중소형사는 전문화·특화를 통해 자본활용도를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