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감독당국자들이 연이어 금융권의 과당경쟁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은행장을 비롯, 금융권이 과당경쟁 자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경기회복 속도가 당초 기대보다 더딘 가운데 은행들만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비판을 수용한데다 과당경쟁으로 수익성이 둔화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금융권은 당분간 ‘내실 다지기’에 주력할 것으로 보이지만 상황변화에 따라 또다시 전쟁을 방불케 하는 경쟁상태로 돌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1일 여의도 본점에서 열린 월례조회에서 “연초의 경기회복 심리가 주춤하고 있는 데 비해 은행들의 경쟁이 너무 앞서가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상반기 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리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현 시점에서 중요한 일은 금리인하 등 무리한 영업경쟁이 아니라 고객을 모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권석 기업은행장도 이날 월례조회에서 “환율ㆍ유가 등 불안한 대외변수로 경제의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경기의 본격적인 조기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장밋빛 전망에 대한 경계론을 피력했다.
은행권 수익성 악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신상훈 신한은행장은 이날 월례조회에서 “신한은행의 강점이었던 건전성과 생산성에서 다른 은행과의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면서 “자산과 영업이익은 정체된 반면 지출은 증가하고 있어 경비 효율성 등 몇몇 지표는 우려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은행장들이 직접 나서서 과당경쟁을 자제하거나 비용을 절감하자는 목소리를 낸 것은 경기회복 지연에 대한 우려감뿐 아니라 금융당국이 과당경쟁을 자제할 것을 촉구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지난 5월13일 금융연구원 조찬 강연에서 블루오션(blue oceanㆍ경쟁자가 없는 새로운 시장) 전략을 소개하며 금융권의 과당경쟁에 따른 경쟁력 약화에 대해 우려감을 표시한 바 있다. 금융감독원은 은행들에 담보대출 한도의 축소와 금리인하 자제, 재건축ㆍ재개발 아파트 집단대출 한도 조정 등 담보대출 규제방안을 마련해 시행에 들어간 바 있다.
과당경쟁에 따른 자정을 결의하는 행사도 이어졌다. 전국은행연합회와 한국증권업협회ㆍ생명보험협회ㆍ자산운용협회 등 4개 금융권 이익단체 회장들은 이날 오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간접투자상품 판매 건전화를 위한 자율 결의서를 채택했다.
이들은 ▦투자자 이익과 재산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투자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며 ▦임직원들의 전문성을 향상시키는 한편 ▦투자자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 시행하기로 했다. 또 보수와 수수료 경쟁 등 양적 경쟁은 지양하고 질적인 경쟁을 통해 간접투자시장 선진화와 발전에 이바지하기로 다짐했다.
은행장들이 이에 따라 ‘내실 다지기’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강정원 행장은 “상품개발과 관리에 대한 노력을 더욱 강화해 고객 기반을 제대로 다져 장기적인 영업역량을 강화하는 게 최선의 영업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신 행장도 “경기회복 지연과 경쟁격화 등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내부적으로 체력과 경쟁력, 지속 성장을 위한 동력 확충에도 문제가 있다”면서 “이러한 흐름을 반전시킬 수 있는 돌파구 마련과 생산성 제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