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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서초 본사에서 수원 디지털시티, 화성 나노시티까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1박 2일의 짧은 방한 일정에도 지난 14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난 데 이어 15일 수원 삼성전자 디지털시티와 화성 사업장을 방문하는 등 이례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만큼 휴대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분야에서 세계 최대 업체인 삼성전자와 페이스북이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양사가 전방위 협력에 나설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미 양사는 가상현실(VR) 기기 분야에서 협업을 시작했다. 여기에 삼성전자의 높은 하드웨어 기술 경쟁력과 13억명의 가입자를 자랑하는 페이스북의 소프트웨어 강점을 결합하는 형태의 추가 협업이 이뤄질 경우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는 점에서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의 이목도 집중되고 있다.
◇가상현실 기기 업그레이드는 협력 '0순위'=저커버그 CEO는 15일 셰릴 샌드버그 최고운영책임자(COO) 등 자사 임원 40여명과 함께 삼성전자 수원 사업장과 화성 사업장을 방문했다. 저커버그 CEO와 페이스북 임원들은 신종균 삼성전자 정보기술·모바일(IM) 부문 사장의 안내로 4월 문을 연 전자산업 박물관 '삼성 이노베이션 뮤지엄(S/I/M)'과 반도체 라인을 둘러봤다. 저커버그 CEO가 전날 이 부회장과 만찬 회동을 가진 데 이어 대규모의 임원을 대동하고 수원 사업장을 직접 방문한 것은 삼성전자와의 전방위 협력에 앞서 시설 규모와 제조 기술력을 직접 확인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저커버그 CEO가 뒤늦게 전자산업을 시작한 한국에서 세계 최대 전자기업으로 발돋움한 삼성전자의 40년간의 성공 스토리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저커버그 CEO는 신 사장을 비롯해 소비자가전(CE), 부품(DS) 등 전 사업 분야의 임원들과 업계 현황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양사의 '성공 DNA'를 공유했다. 특히 가상현실 기기 분야 등 양사의 협력 방안에 대해 다양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기업인 오큘러스VR와 협업해 가상현실 기기인 'VR'를 개발, 출시한 바 있는데 페이스북은 올 초 오큘러스VR를 23억달러(약 2조4,000억원)를 들여 인수했다. 저커버그 CEO는 14일 방한하자마자 오큘러스VR 한국지사를 방문할 정도로 이 분야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기어VR를 더 발전시킨 제품을 내놓아야 하는 삼성전자로서는 오큘러스VR의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필요하고 페이스북 역시 '하드웨어의 삼성'이라고 불리는 삼성전자의 제조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에 가상현실 기기 분야에서의 양사의 협력은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진다는 평가다.
◇헬스케어·모바일 광고·전용폰 등 전방위 협력=양사는 가상현실 기기 외에도 협력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 특히 활발한 기업 인수합병(M&A)으로 사업 영역을 전방위적으로 넓히고 있는 페이스북과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신수종사업에 적극적인 삼성전자가 헬스케어와 모바일솔루션 분야 등에서 접점이 늘고 있다.
최근 운동 기록 애플리케이션인 무브스를 인수한 페이스북은 디지털 건강관리 시장 진출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착용형(웨어러블) 기기인 '기어'에 심박 측정 기능과 산소포화도 측정 기능을 담는 등 이 분야에 이미 진출해 있다. 이에 따라 양사가 온라인 커뮤니티 방식의 헬스케어 서비스를 사업화하기 위한 방안 등에 대해 논의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헬스 앱을 통해 사용자가 자신의 건강 정보를 업로드하면 SNS를 통해 특정 개인이나 사용자들 또는 공공집단이 이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페이스북 전용 스마트폰 개발과 모바일 광고 분야에서의 협업도 예상된다. 모바일 광고는 세계 최대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삼성전자와 세계 최대 SNS 업체인 페이스북이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특히 저커버그 CEO가 지난해 방한 때 요청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던 페이스북 전용폰 개발, 출시도 모바일 광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전용폰을 통해 페이스북은 SNS 이용자들을 확실히 자기 서비스에 묶어두면서 맞춤형 광고를 운용할 수 있게 되고 삼성전자는 안정적으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동시에 자사의 모바일 서비스를 페이스북에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윈윈'이다. 이 때문에 업계는 양사가 이번에 전용폰의 출시 시기와 주요 사양에 대해 최종 조율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성공 DNA 공유 통해 IT 선도기업 입지 강화=업계에서는 저커버그 CEO가 이번 방한 일정을 삼성전자 위주로 짠 데 대해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방한 때 대통령 접견 등의 다양한 일정을 소화한 것과는 차별화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이 부회장의 역할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6월 방한한 저커버그 CEO를 만나 협업을 논의했고 7월에도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열린 '앨런앤드코 미디어컨퍼런스'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는 등 친분을 쌓은 것이 이번 협력 강화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IT업계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면서 각각 휴대폰과 SNS 분야에서 1위인 삼성전자와 페이스북도 현재의 지위를 유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양사 경영진과 임원들이 이례적으로 이틀에 걸쳐 만남을 가진 것은 지금까지의 성공 DNA를 공유하고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 글로벌 IT 시장의 선도기업 입지를 다지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