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한국의 마이스터 소공인 밸리를 가다] <4> 대구 교동 주얼리특구

中 저가제품 공세에 화려했던 과거 명성 빛 잃어

디자인 경쟁력 키워 위기 극복해야

출혈 경쟁으로 마진 30%도 안돼

상품 질 하락에 손님 발길 줄어… '10년째 제자리' 수공비 개선 시급

15일 대구 교동 주얼리타운에 자리한 한 귀금속공장에서 작업자가 심혈을 기울여 반지 가공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주얼리소공인특화지원센터

대구 주얼리업체들로 유명한 교동 일대는 6·25전쟁 이후 피난민과 군인들을 상대로 미군 부대 PX에서 흘러나온 물건들을 팔던 번화가였다. 다양한 상권이 발달했던 이곳은 1970년대 당시 인기품목이었던 시계 매장들이 즐비했다. 이후 군수품과 시계부품이 거래되던 상권에는 점차 순금, 18K 공장들이 자리 잡았다. 1980년대에 와서는 전국 최초로 주얼리캐스팅기법이 도입되면서 주얼리의 양성화, 대량화가 본격화돼 귀금속 골목으로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다.


수십년간 이곳에서 귀금속을 가공·판매해온 소공인들이 기억하는 교동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주얼리 가공단지다. 88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Made in Korea' 귀금속들은 불티나게 해외로 팔렸다. 교동 일대는 아침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중간상인들이 새까만 007가방을 들고 매장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질 정도였다. 인기가 많은 물건들은 금방 동나기 때문에 일찍부터 자리 잡지 않으면 괜찮은 물건을 놓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15일 찾은 패션주얼리 특구의 모습은 화려했던 과거 명성과 달리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20여 년간 대구에서 귀금속을 가공해온 황 모 대표는 "IMF 위기 때 전국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을 하고 난 뒤부터 주얼리에 대한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고 시장이 축소됐다"며 "KTX가 생긴 이후 서울에서 중국산 저가 제품들이 물밀듯이 내려왔고, 현재 이 지역 매장에 깔린 물건 중 80~90%가 서울에서 온 것"이라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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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전국에서 유일하게 패션주얼리 특구로 지정된 이 곳은 제조 및 가공업체 80곳, 판매업체 220곳 등 약 300개 매장이 들어서 있다. 현재는 한 건물에 수많은 매장들이 상품을 진열해놓은 귀금속 백화점 형태의 가게들이 주를 이룬다. 한 귀금속 업체 대표는 "10년 전과 비교해 수공비는 거의 오르지 않은 데다 업체들이 저가 공세로 제 살 깎아 먹기를 하고 있어 제품의 질은 계속 떨어지고 손님들 발길은 뜸해지는 실정"이라며 "중국에서 만든 반제품을 서울에서 완성해 대구로 가져와 판매하고 있어 귀금속을 직접 가공하는 현지 소공인들의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한평생 귀금속을 매만져온 소공인들은 해결책으로 '사람'과 '디자인'을 꼽는다. 대구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귀금속 명장 박정열 진영사 대표는 "보석 디자인 주문이 들어오면 보석을 사용할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디자인에 담아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스토리를 보석으로 만들어준다"며 "결국 보석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진 장인들이 합당한 수공비를 받고 주얼리 산업을 키워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백화점에서 5배 가까운 마진을 남기는 다른 패션 산업과 달리 30%에 못 미치는 마진을 남기며 출혈경쟁을 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으론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

박 대표는 이를 위해 주얼리산업에 종사하는 소공인들이 사명감을 갖고 디자인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인터넷에 너무나 많은 정보가 공개되면서 18K 가격이 얼마인지 적어온 종이를 들이미는 사람들이 많다"며 "귀금속은 디자인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상품이라는 점을 우리 스스로 인식시켜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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