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주주총회 문화

매출액 43조5,800억원, 영업이익 7조1,900억원, 순이익 5조9,600억원. 지난해 삼성전자가 거둔 경영실적이다. 올해 전망은 더 고무적이다. 매출액은 53조원을 넘어서고 영업이익만도 10조원이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무한경쟁으로 기업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여건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일류기업다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삼성전자가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23%를 차지하는 핵심 블루칩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개략적이기는 하지만 이만하면 삼성전자 주식을 가진 주주들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주주총회장이 축제 분위기가 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얼마 전에 있었던 삼성전자의 주총은 무척 시끄럽고 살벌했던 것 같다. 회사측과 일부 주주들간 말다툼ㆍ몸싸움으로 주총장은 엉망이 됐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사정이야 있겠지만 높은 주가에다 세계 어느 일류기업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경영실적을 낸 기업의 주총치고는 아이러니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고 보면 주총의 의미와 풍속도도 많이 달라졌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는 인식과 함께 주주 중시 경영이 확산되고 소액주주의 권한이 크게 강화되면서 주총의 중요성이 엄청나게 높아졌다. SK사태에서 보는 것과 같이 주주들의 표심에 따라 대기업의 경영권 자체가 좌우되는 사례도 흔해지고 있다. 이른바 전문 총회꾼들의 비위를 적당히 맞추는 선에서 오너 또는 경영자들이 적당히 때워 넘기는 식의 형식적 주총은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제도적으로 주주들의 권한이 크게 강화되고 전문지식과 높은 식견으로 무장한 주주들이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주주의 권한 강화는 기업의 투명성과 가치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실제 올들어 주총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은 배당 확대 등을 통한 주주 중시 경영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사외이사 비중을 늘려 경영 투명성을 높이는 노력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고배당을 실시하고 자사주소각 등을 통해 주주들의 이익을 우선하는 조치를 취하는 기업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과거 오너와 경영진의 독단경영을 지양하고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사외이사 비중을 늘리고 이사회가 중심이 되는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들도 많아지고 있다. 우량기업들을 중심으로 이사의 과반수 이상을 사외이사로 채우는 기업들이 적지않다. 소액주주운동이 확산되면서 대주주 또는 오너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도 크게 강화되고 있다. 대표소송제ㆍ집중투표제의 도입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오랫동안 지속돼온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빠른 속도로 주주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는 셈이다.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주주 자본주의가 반드시 좋은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주의 권리를 존중하는 주주 중시 경영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주주의 역할이 크게 높아지고 있는 것과 비례해 주총 문화도 이제 성숙될 때가 됐다. 경영진은 주주와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더 이상 기업이 발전할 수 없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명실상부한 주주 중시 경영을 실천하고 주주들도 정당한 권리는 행사하되 경영실적에 대한 개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주총에 임하는 합리적인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주주권과 경영권을 서로 존중하고 조화를 이룸으로써 불필요한 대립과 갈등을 막고 주총장이 살벌한 싸움터가 되지 않도록 주주와 회사의 공동 노력이 요구된다. 주주의 권리와 이익은 물론 우리 모두의 귀중한 자산인 기업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생산적인 주총 풍토가 아쉽다. <논설위원(경영博) sr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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