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리빌딩 파이낸스] 2부. 금융의 판이 바뀐다… <5ㆍ끝> 서민금융, 시장 파이를 키워라

외국계 자본 과도한 쏠림 우려… 대부업, 저축은행 인수 길 열어줘야

미래저축은행을 인수한 일본계 친애저축은행이 지난 2012년 10월 영업을 재개한 첫날 한 고객이 영업점에 들어서고 있다. 최근 2~3년간 해외 자본을 중심으로 국내 저축은행의 인수합병(M&A)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업계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서울경제DB



지난 3년은 저축은행 업계의 암흑기다. 2011년부터 시작된 구조조정으로 업계 전체 자산의 절반이 사라졌고 저축은행 30여곳이 퇴출됐다. 건전성 관리를 위한 강도 높은 규제와 한번 추락한 신뢰도는 번번이 저축은행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대로 저축은행 업계가 고사할 수 있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지만 최근에는 저축은행 업권에도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다양한 금융시장 주체들이 부실 저축은행 매각작업에 뛰어들며 저축은행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풍부한 자금력을 앞세운 해외자본이 국내 저축은행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제도권 금융 진출을 노리는 대형 대부업체들은 이미 저축은행의 문턱까지 도달했다. 금융지주사나 증권계 지주사들이 부실 저축은행을 줄지어 인수하며 저축은행 주주들의 대형화도 하나의 큰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부터 재편되는 서민금융 정책에 따라 '대표적 서민금융기관'인 저축은행의 역할론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저축은행 판도변화 주도하는 외국계 자본=저축은행의 구조조정은 역설적으로 저축은행 업계의 시장 참여자가 확대되는 기반을 마련해줬다.


2011년 이후 매각된 저축은행 중 금융지주사와 증권사가 인수한 저축은행 숫자는 현재까지 17곳에 달한다. 2년이 넘는 퇴출작업으로 금융지주사와 증권사의 인수여력은 소진된 반면 상시 구조조정 작업으로 퇴출 저축은행은 끊임없이 인수합병(M&A) 시장에 등장하고 있다.

시장의 피로가 쌓이면서 금융당국도 저축은행의 원활한 매각을 위해 빗장을 서서히 풀고 있다. 이 틈새를 비집고 외국계 자본이 속속 국내에 상륙하고 있다.

호주계 페퍼저축은행은 지난해 말에만도 늘푸른저축은행과 가교저축은행인 한울저축은행 두 곳을 연이어 인수했다. 이와 함께 매물로 나와 있는 예성·예주·예신·예나래저축은행 등 4개 가교저축은행은 일본계 대부업체인 러시앤캐시가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김정렬 한성대 교수는 "외국계 금융사들은 소액신용대출 등을 중심으로 들어와 여타 금융권역으로 영역을 확대할 수 있는 교두보로 저축은행을 선택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엔저가 장기화되며 2~3%의 저렴한 조달금리를 앞세운 일본계 자금들의 국내 저축은행 인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참여자 다변화…'양날의 칼'=저축은행 업계에서는 시장참여자 확대에 일단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저축은행 간 경쟁강화가 체질변화로 이어지고 대형 시중은행과 대부업체로 이탈했던 고객들을 되찾아올 모멘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깔려 있다.

실제 KB금융지주 계열인 KB저축은행은 지난해 6월부터 20%대 중금리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저축은행 인수를 추진 중인 최윤 러시앤캐시 회장도 "20%대 중금리 대출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규모 자본력을 갖춘 대주주의 등장은 중장기적으로 제도개선을 이끌어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저축은행의 한 임원은 "금융지주나 대기업 계열 대주주가 늘어나는 것은 저축은행 업계 전체의 대주주 역량이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제한 뒤 "대부업과 신용정보(CB)가 공유되거나 정책금융 취급을 허용하는 등 정책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은 시장 플레이어 다변화에 따른 순기능보다 부작용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외국계 자본의 경우 선진 금융기법을 앞세워 차별화된 금융 서비스와 상품을 선보일 것이라는 당초 기대와 달리 "국내 자본만 잠식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손쉽게 자산을 늘릴 수 있는 소액신용대출이나 담보(보증서)대출 등 기존 저축은행들과 다를 바 없는 구태의연한 영업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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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말 기준 SBI저축은행의 대출채권은 8,400억여원으로 현금·예치금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약 3,700억원에 그쳤다. 같은 기간 OSB저축은행의 현금·예치금은 900억여원으로 대출채권(5,500억여원)의 16%에 불과했다.

호주에서 주택담보대출 전문회사를 모기업으로 둔 페퍼저축은행은 국내에서 보증서대출인 햇살론과 사업자담보대출에 치중하고 있다. 지방 중소도시에 진출한 외국계 자본은 동일 영업구역 내의 중소형 저축은행 자산을 잠식하는 '황소개구리'로 부상하는 실정이다.

금융지주계 저축은행의 등장은 '낙수효과'의 실종을 초래하고 있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금융지주계 저축은행이 등장한 후) 시중은행·캐피털과 공동으로 추진하는 컨소시엄 대출에서 비금융지주계 저축은행이 배제되는 경우가 일반화되고 있다"며 "금융지주 계열사 내 연계영업이 강화되며 시중은행에서 외면하던 저신용자들을 취급할 수 있는 기회 역시 예전만 못하다"고 하소연했다. 네트워크나 브랜드 역량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금융지주계 저축은행에 대한 고객쏠림 현상이 나타나며 비금융지주계 저축은행과의 격차는 더 확대될 수밖에 없다.

◇건전한 생태계 조성을 위한 '비타민'=현재 진행되고 있는 저축은행 업계 재편이 저축은행 업권의 부활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저축은행의 재도약은 정책지원이라는 '발판' 없이는 불가능한 그림이다.

전문가들은 저축은행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운영과 조달 측면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류창원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지역 내에서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상호금융기관 수준의 저율과세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저축은행의 수익성을 개선하고 여타 금융업권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영업구역 내 50% 의무대출 비율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시중은행은 중소기업 의무대출 비율이 도입돼 있으나 강제사항이 아니다. 지방은행은 대출자산의 60%를 중소기업에 지원해야 하지만 영업권역 내 의무비율은 없어 수도권이나 대도시로 진출할 수 있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저축은행의 영업구역 내 의무대출 비율을 신규 취급액 대비 일정비율로 변경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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