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는 자신의 창조적 사고와 부단한 노력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세계최고의 소프트웨어회사로 일궈내면서 아직 젊은 나이에 세계에서 첫손 꼽히는 부자가 됐다. 그래서 지구의 반대편 우리나라 사람들(대부분 컴퓨터산업에 대한 이해가 그렇게 깊지 않은) 에게도 그는 가히 신화적 인물이다. 다른 무엇보다 그가 당대에 쌓아올린 부(富)의 높이가 너무나 엄청난 까닭이다.그러나 이제 그는 「세계 최고의 갑부」일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자선가」반열에 이름을 뚜렷이 새기고 있다. 자신을 키워준 사회로 눈을 돌릴 줄 아는 그야말로 영웅부재의 현대에서 진정한 영웅으로 칭송받아 마땅하다.
미국에는 빌 게이츠 이전에 우리가 잘아는 두사람의 자선가가 있다. 석유재벌 존 데이비슨 록펠러와 흔히 강철왕으로 불리는 앤드루 카네기다. 두 사람은 미국 자본주의의 맹아기인 19세기말과 20세기 초 각각 스탠더드 오일과 피츠버그제철소를 중심으로 트러스트를 조직, 거대한 부를 축적했다. 「독과점」에 대한 비판이 그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음은 물론이다. 사실 이 부분의 단면을 들여다 볼때 그들에 대한 그같은 비난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렇게 악착같이 번 돈을 아낌없이 사회에 되돌렸다. 록펠러재단과 카네기재단이 오늘날 세계 문화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해 보면 이들의 「쾌척」이 얼마나 위대한 결실을 맺었나를 알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의 기업과 기업인들로 눈길을 돌려보자. 몇몇 대기업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공익법인과 문화 교육 육영재단들이 설립돼 있다. 기업메세나 형식의 문화지원도 사뭇 활발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것은 대기업들의 지주회사(持株會社)역할을 하거나 부의 변칙상속, 심지어는 탈세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도 있다는 지적을 받기까지 한다.
지금「재벌개혁」을 화두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드러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재벌은 우리나름의 독특한 시스템』이라고 항변한다. 또 『기업인의 의욕을 꺾는다』고 속을 부글부글 끓이고 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대다수 국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의 정서 밑바탕에는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정책적 결단에 대한 명료한 인식보다는 『왠지 밉다』라는 「재벌때리기」식 심리가 더욱 짙게 깔려있다.
왜 그럴까. 우리의 기업, 기업인은 이윤을 추구할 줄만 알았지, 그것을 사회에 환원하는데는 인색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윤을 철저히 사유화했던 기업과 기업인들로 인한 손실이, 사회화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당연하다.
정당이 정권획득을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삼 , 기업은 이익추구가 지고(至高)의 가치다. 그러나 이윤의 일정부분을 사회로 되돌리는 「책임」을 보일 때, 사회는 더 큰 이익을 기업에 안겨준다. 슘페터가 말한 「기업가 정신」에 이제 「사회적 책임」을 추가해야 할 듯 싶다.
이종환 산업부차장JWLEE@SED.CO.KR